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쇠말뚝 (문단 편집) === 그렇다면 발견된 쇠말뚝은 무엇인가? ===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살다보면, 땅에다 쇠로 된 기둥이나 말뚝을 박을 일은 무수하게 등장하며, 특히 근현대로 들어오면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후대에 땅을 조사하다보면 이곳저곳에 박힌 쇠말뚝은 당연히 발견될 수 밖에 없다. 일제는 조선 강점 초기부터 토지측량 및 조선인 토지 몰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토지 관련 사업을 시행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쇠로 된 기둥 종류는 매우 많이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연히 쇠말뚝은 이곳저곳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 1931년 철원-금강산을 오가는 철도노선인 [[금강산선]]이 개통되었는데, 이 지역은 험준한 산지이므로 정확한 측량을 위해서는 쇠말뚝이 필요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https://www.i815.or.kr/upload/kr/magazine/magazine/31/post-319.html|출처]] 금강산 개발과 관광철도에 대한 이야기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북한편 제2권 "금강산 -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에도 상세히 실려 있다. 서울 인근 북한산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등산로는 일제강점기에 정비된 것이다. 백운대에 철제 난간 등을 처음 설치한 것도 이때이다.[[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1022601870|출처]]이렇다보니 명산을 조사하다보면 당연히 일제강점기에 박힌 철제 구조물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파일:쇠말뚝.jpg]] 이뿐만이 아니다. 위에 서술한 것과 동일한 이유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박힌 쇠 구조물 또한 매우 많다. 그러한 쇠말뚝이 발견되는 것 뿐이다. 실제로 발견된 쇠말뚝의 형태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측량용으로 꽂은 것과 과거 국군의 임시 막사 설치 시 꽂아 놓고 잊어 버린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들이 많다. 일제강점기에 박은 쇠말뚝이라고 소개된 위 사진을 보면 위가 고리형으로 된 게 군인들이 임시 천막 설치할 때 쓰는 지주핀과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는 말뚝에 '''한국 정부 각인'''이 찍힌 경우도 있다고. 현대에도 추가로 포병 [[INS]] 위치 캘리브레이션을 위해 측량지점에 콘크리트 대신 간이형으로 박아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한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쇠말뚝은 누군가가 어떠한 합리적인 목적으로 박은 것일 뿐이고, 일제의 풍수침략용 쇠말뚝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다. 최근에는 일제가 측량을 위해 박았던 것은 위에 적혀있다시피 사실이고 그걸 알고 있는 사람들도 토지측량당해서 일제에 세금 내기도 싫어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당시 일본 사료에 한국인들이 측량용 쇠말뚝을 무속 때문에 뽑아서 골치라는 구절을 근거로 일종의 저항 정신이라는 평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