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궁동 (문단 편집) === 온수동 === ||<-2> '''[[구로구|{{{#000000,#dddddd 구로구}}}]]의 [[법정동|{{{#000000,#dddddd 법정동}}}]]'''[br]'''{{{+1 온수동}}}'''[br]溫水洞 | Onsu-dong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구로구 온수동, 너비=100%, 높이=100%)]}}} || ||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구로구 || || '''행정표준코드''' || 1153011000 || || '''관할 행정동''' || 수궁동 || || '''면적''' || 0.84㎢ || --Hot Water 동--[* 진짜 온수동 이름 유래가 '따뜻한 물'인 온수다. 자세한 건 아래 문단 참고.] 낡은 [[빌라]]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동네이다. 2006년에 온수빌라 [[재개발]]을 시작하여 몇몇 대형 빌라단지들도 재개발을 위한 절차를 밟으며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와의 경계에는 '''[[서울온수일반산업단지]](온수공단)'''가 있으며, 이 중 절반은 경기도 부천시 역곡1동 관할이다. [[온수공영차고지]]가 [[온수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온수역]]이 시종점인 버스들이 많다. 덕분에 온수역 부근에서 시내버스에 승차한다면 수월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어''' 부천시나 [[오류동(구로구)|오류동]], [[개봉동]]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심지어 옛날에는 온수동 공단주들이 경기도 부천시로의 편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1240032920900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7-11-24&officeId=00032&pageNo=9&printNo=12972&publishType=00020|관련 기사]]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약으로 이후 3선을 하게 된 당시 [[이성(정치인)|이성]] 후보가 온수공단에 영화 기획부터 촬영, 후반작업까지 한 번에 이루어질수 있는 한국형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온수영상미디어타운 조성을 추진 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http://m.kuro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59|#]] 실제로 [[온수역]]은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일부까지를 [[역세권]]에 두고 있으며, 이 곳 주민들은 소비활동을 영등포구나 구로동까지 나가지 않고 바로 옆의 '''역곡동이나 부천시내'''에서 해결한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중국집 전단지를 보면 전화번호의 대다수가 '''032'''-XXX-XXXX다. 경기도 부천시 관할 '''[[마을버스]]''' 노선이 2개나[* '''서경운수''' 013-1. 역곡북부역, [[까치울역]], 여월지구, 부천종합운동장, 원미어울마당, [[신중동역]]을 거쳐 부천시청까지 간다.][* '''서경운수''' 013-2. 역곡북부역, [[까치울역]], 여월지구, 부천종합운동장, [[원미동]], 심곡복개천, 신중동역, 부곡중/계남고를 거쳐 중동역까지 간다.] 온수역 5번 출구 앞을 거쳐 수궁동 양지연립주택까지 들어온다. 게다가 온수동 구간은 [[온수공영차고지]] 앞의 온수동종점 정류장만 빼고 '''단독구간'''이다. 그 외에도 [[부천시 버스 목록|부천시 시내버스]]인 [[부천 버스 52|52번]], [[부천 버스 57|57번]], [[부천 버스 57-1|57-1번]]이 온수역 남부에 정차한다. 다만 [[학군]]은 [[서울특별시]]에 속해 있다. 유선전화도 [[KT]]개봉지사 관할이며, 그 관할구역이 부천시 [[옥길동(부천)|옥길동]], [[역곡동]] 일부까지 분할 편입되었다. 한자로는 溫水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 이 일대의 행정구역 명칭은 [[부평도호부]] 수탄면(수곡면) 남촌 온수리였다. [[세종대왕]]이 서울 가까이 온천을 만들고 싶어했는데 이 곳 백성들과 그 지역 아전(향리)들이 임금이 오지 못하게 간헐천 온천을 막아버렸다는 설이 있다. 임금이 온천욕을 하러 오게 되면 지역에 [[금산#s-4|금산]]이 걸려서 [[님비현상|강제로 이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천욕을 즐길 수 없게 되어 분노한 세종은 이 지역 아전들을 [[고문]]하고 부평도호부에서 부평현으로 2등급이나 강등을 시켜버렸다는 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4권 21년 2월 21일 5번째 기사, 90권 22년 8월 27일 2번째 기사, 92권 23년 1월 7일 1번째 기사, 92권 23년 2월 2일 3번째 기사] 그런데 실제로는 수맥을 막은 건 아니고 못찾은 것이 정설이다. 실망한 세종이 혹시 토박이들이 알고도 가르쳐주지 않은 건 아닌가 의심해서 부평현으로 잠시 강등했을 뿐이다. 세종 대에도 못찾았지만 지금 온천 수맥을 역시 못찾고 있다.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 군사정부때에 이르기까지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온수동 일대의 온천을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그 자리에 빌라촌이 들어섰다. 현재까지 온천재개발은 감감무소식이다. 대리기사들이 매우 좋아하는 동네이다. 160번과 N16의 종착지가 여기인지라 심야에도 버스걱정할 일이 없다. [clearfix]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