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나라 (문단 편집) === 개황의 치 === 기나긴 분열 시대가 종결되었고 천하통일이 되어 사회가 안정되자 인구는 증가했다. 수문제는 희대의 [[성군]] 및 [[명군]]이었는데, 귀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억누르며 각자 토지를 지닌 소규모 자작농들을 대규모로 늘리고 '삼장제'와 '균전제'를 확립시키는 지대한 업적을 세웠다. 수문제가 확립한 이런 토지 정책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시기까지 이어질 정도로 통일 왕조들의 토지 정책의 뼈대로 작용했다. 조세를 낮추고 하사물을 성대히 내렸음에도 국고가 모두 차 넣어둘 곳이 없어 곁채에 쌓았을 정도였으며, 수문제가 선양을 받은 초기에 집계된 민호가 채 400만 호를 채우지 못하였으나 재위 말년에는 890만 7,000여 호(606년, 추정 4,600만 명)로 늘어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후 수나라의 붕괴 과정에서 누락된 수많은 인구들은 측천무후-당현종 시절의 전성기가 되어서야 906만 9,000여 호(754년경, 약 5,288만 명 추정)로 겨우 복구가 된다. 이를 다르게 보면 수양제가 중국 최고의 성군 및 명군 중 한 명인 [[태종(당)|당태종]]이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막장짓을 한 셈. 인구뿐만 아니라 경제력 또한 막강했는데, 훗날 당나라는 수 문제 시기의 경제력을 '비단과 금을 분토처럼 여긴' [[당현종]] 천보 초엽이 되어야 따라잡는다. 이때 쌓인 국부가 상상을 초월해 그 이전 왕조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황하]]-[[장강]]을 연결시키는 [[대운하]] 건설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이 수문제 양견이었다. 다만 양견은 대운하 공사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신하들이 대운하 건설로 백성들이 고통받는다는 간언을 하며 만류하자 곧바로 대운하 건설을 중단했기에, 후일 수양제 양광이 대운하를 완공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수나라의 대운하.jpg|width=100%]]}}}|| || {{{#000,#fff 수나라가 완공한 대운하.}}} || 수문제는 사치를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세금을 줄여주었고, 어떤 해에는 아예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다. 또한 지방까지 관리를 파견하고 500가를 향으로, 100가를 리로 조직하여 통치 체계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으며, 어느 정도 제국의 기틀이 잡히자 관료들에게도 따로 경비를 마련해 주어 관료들과 귀족들이 함부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황권 강화를 위해 임용 제도를 개혁하여 사실상 이 시점에선 무력화된 [[구품중정제]]를 폐지하고 연고지 복무를 금지했으며, [[과거제도]]의 전신인 선거제를 도입했다. 물론 강력한 귀족 세력을 없애지는 못했으나 이후 당대까지 관롱귀족의 견제 세력인 과거 출신자들을 기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으며, 사유화 되어가던 관직의 공공성을 고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수문제는 스스로 조악한 옷을 입고, 검소한 식단을 유지하며, 모든 일을 하층민의 삶에 따라 시도하려 한 보기 드문 [[성군]]이라 할 수 있었고, 이에 '[[한나라]]를 [[한고조]]가 세우고 [[문경지치]]를 거쳐 [[한무제]] 시절에야 이룩한 번영을 양견은 그가 통일하고 그가 이루어냈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의 뛰어난 정치능력을 선보였다. 그리하여 그가 이룩한 정치 제도들은 후에 당나라 [[율령제]]의 기초가 되어 이후 중국 통일 왕조 체제의 뼈대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수문제가 사망하고, 둘째 아들인 양광이 뒤를 이어 [[수양제|양제]]로 즉위하면서 수나라는 얼마 못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양광이 즉위 과정에서 수문제를 [[패륜|암살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양제는 즉위 이후 대운하를 비롯한 수많은 토목사업을 벌였으며, 용선을 타고 지방으로 자주 유람을 다니는 등 꽤나 사치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또한 남북조시대 동안 무너진 주변국과의 질서 회복을 위해 [[돌궐]]과 서역에 위치한 [[토욕혼]](土谷渾)을 정벌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때 추위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이 과정에서 양제는 '''얼어죽을 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