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로왕 (문단 편집) ==== [[탈해 이사금]] 대의 기록 ==== 탈해 이사금과는 티격태격 했는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바다 건너에서 태어난 석탈해가 대뜸 왕에게 와서 "왕위를 계승하려고 합니다."라며 하자 기가찬 김수로는 "좋다 나와 ~~마술~~ 술법 배틀 해서 이기면 내주마"라고 제안했고 김수로가 이겨서 탈해는 신라로 갔다는 기록이 나와있고, 삼국사기에서는 알이 금관국 바닷가에 도달했다가 신라로 도착해서 그곳에서 깨어났는데 알에서 태어난 애가 석탈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금관국을 거쳐서 신라로 오게 된 듯 하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그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두었다. 처음에 금관국(金官國)의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서 거두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阿珍浦) 어구에 다다랐다. >ㅡ 《[[삼국사기]]》 신라 본기 훗날 탈해가 왕위에 오르고 가야국을 침범한 기록도 남아 있는데 >二十一年 秋八月 阿湌 吉門與加耶兵 戰於黃山津口 獲一千餘級 以吉門爲波珍湌 賞功也 >21년 가을 8월에 아찬 길문(吉門)이 가야(加耶) 군사와 황산진(黃山津) 어구에서 싸워 1천여 명을 목베었으므로 길문을 파진찬으로 삼아 공로를 포상하였다 수로왕 25년(서기 77)에 탈해 이사금이 아찬 길문에게 병력을 내주어 금관국을 치게 했고 이를 막기위해 병력을 황산진으로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