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로왕 (문단 편집) === 사후 === 금관가야가 532년 신라에 멸망하고,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에 대한 제사를 멸망 후에도 계속하긴 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할 수는 없었고 다소 소홀해져 가끔 빠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신라]] [[문무왕]] 때인 661년 조서를 내려 수로왕의 묘를 신라의 [[종묘]]에 합해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는 문무왕의 모친 [[문명왕후]]가 [[김유신]]의 [[여동생]]이며,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 [[구형왕]]의 증손자다. 즉 문무왕 역시 신라 왕이면서도 외가 쪽으로 수로왕의 직계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 인근에 왕위전(王位田)을 만들고 그 밭을 수로왕의 직계 후손이 맡게 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후삼국시대]]의 혼란기에 들어서는 [[호족(한국사)|호족]] [[소충자]]가 김해를 차지했는데, 소충자의 부하 영규(英規)와 준필(俊必)[* 굳이 수로왕의 제사를 빼앗아 지내려고 시도한 것으로 봐서 이들이 김해 김씨 방계가 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다.]이 수로왕의 제사권을 빼앗아 대신 지내려고 하다가 불길한 일이 계속되어 그만두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소충자 문서 참조. 결국 소충자는 명령을 거두고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이 다시 제사를 맡도록 넘겨주었다. 이후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제사가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