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류탄 (문단 편집) === 고대 === [[파일:FireArmsDunhuang10AD.jpg|width=600]] 10세기 둔황석굴의 벽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방해할려는 마라(魔羅)들 중에서 윗쪽에 불을 뿜는 막대기와 불이 붙은 구체를 든 마라가 있는데 초창기 [[핸드 캐논]]과 수류탄이다. 과거 '수류탄'과 비슷한 무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그리스의 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무기는 [[항아리]]나 통 안에 액체화약을 넣고 손이나 노포 등으로 투척하여 [[불]]을 붙이는 식으로 운용된, 현대의 '[[소이탄]]'과 비슷한 무기이다. 몽골군도 기름이 담긴 한 손에 들어갈 크기의 작은 항아리에 불심지를 꽂아 투척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화공무기를 화구(火毬, 火具)라고 불렀다. 당시의 수류탄은 안에 있던 액체가 퍼지게 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최대한 깨지기 쉬운 재질을 애용하였다. 처음엔 [[암석|돌]]을 얇게 가공하는 식으로 투척 무기를 만들었으나, [[유리]]의 발견 이후 유리를 이용해 만들기도 하였다.[* 이 시절에 유리는 제조도 어렵고 기술도 일부에게만 공개되어 있어서 '''보석''' 취급을 받았다. [[신라]] 유물만 봐도, 왕족 무덤에서나 부장품으로 겨우 나오는 게 유리 장신구다.] 조선에서는 특이하게 종이로 만든 발화통과 지화통이라는 수류탄을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발화통은 대/중/소발화통과 대[[신기전]] 장착 전용의 대신기전 발화통[[https://www.scienceall.com/%EB%8C%80%EC%8B%A0%EA%B8%B0%EC%A0%84%EB%B0%9C%ED%99%94%ED%86%B5/|#]]이 있으며, 지화통은 그 자체가 터지는 게 아니라 산화신기전이나 나무를 깎아 겉을 만드는 투척 폭탄인 질려포통[* 질려포라고도 하는데 예전엔 질려탄으로 잘못 알려졌다. 육상용은 안에 [[마름쇠]]를 넣지 않고 산화포통이라고 부른다.] 안에 발화통과 같이 넣어 사용시 적을 놀라게 하거나, 땅에 묻어 두었다가 적이 다가오면 불을 붙여 하늘로 솟구치는 불길로 적을 놀라게 하는 용도로 쓰였다. 한편 중국에서도 9세기경 송나라 시대에 이러한 무기체계가 등장하였으며 이를 '[[진천뢰]]'라고 불렀다. 이 진천뢰는 처음에는 옹기 안에 화약을 넣고 긴 [[심지]]를 꽂은 뒤, [[여우]]가 다가오면 폭발시켜 기절한 여우를 잡는 덫이었으나 곧 전투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금나라의 시인 [[원호문]]의 『속이견지(續夷堅志)』에 나오는 호거수(狐鋸樹)이야기에 실려 있다.] 전투용 진천뢰는 금속이나 흙을 빚어 만든 구체 안에 화약을 넣고, 사용시엔 꽂아둔 심지에 불을 붙여서 투척하여 투척 후 심지를 통해 불이 내부의 화약과 접촉하면 화약이 폭파하는 것을 노린 무기이다. 금속 파편보다는 화약의 폭발성을 노린 것에 더 가까운 무기이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수류탄'의 개념에 제일 근접한 물건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불'보다는 '진천뢰'를 수류탄의 기원으로 치는 경우도 많다.[* 이 진천뢰를 유탄이나 박격포탄처럼 [[완구(화포)|완구]]로 발사할 수도 있게 만든게 조선의 [[비격진천뢰]]다.] 이 무기는 발달하면서 겉에 화살촉 모양의 쇠조각을 박아 폭발시 위력을 늘리거나, 아니면 화약에 독극물을 섞어 화학전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나중에 몽골과 고려로도 퍼져나갔고,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 철화포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어 열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이후 일본에서도 [[호로쿠비야]]([[포락옥]])라는 비슷한 형태의 무기가 개발되어 전국시대까지 종종 쓰였으나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사용 빈도는 낮았다. 하지만 화포의 발달로 수류탄은 그 자리를 점차 잃었다. 후술하겠지만 던지기도 힘들고 위험하기만 한 이런 물건을 쓰느니 그냥 그 수류탄의 무게만큼 총알과 화약을 더 쥐어주는 편이 훨씬 효율이 좋았기 때문. 화력이 필요하면 화포를 끌고 오면 되는 거고. 그리하여 아시아권에서 수류탄은 대부분 '가끔 기습적으로 쓰는 무기' 취급이었던 반면, 유럽권에서는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어떻게든 사용하려고 하게 된다.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는 수군에서 질려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발화통 역시 군용이나 봉화대 등에서 빈번히 사용하였으며 종종 명나라 사신의 요청으로 중국으로 보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