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신사 (문단 편집) == 1차 수신사 == 1876년 2월 22일 [[김기수(1832)|김기수]]를 수신사로 임명하였고 그를 [[위시]]한 75명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김기수 일행은 4월 29일 부산을 출발해 5월 7일 도쿄에 도착하였고 20일간 도쿄에 머물면서 [[메이지 덴노]]를 비롯해 [[산조 사네토미]],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의 주요 인사를 만나고 일본의 각종 시설을 시찰하였다. 김기수는 기행문「일동기유」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의 서구화된 일본의 모습을 소개하고 일본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다만 주장과는 별개로 김기수를 비롯한 수신사 일행은 일본을 보면서 상당한 [[컬쳐 쇼크]]를 받고 서양 문물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일본 정부가 주최한 무도회에 참석한 것이 있다. 남녀 쌍쌍이 모여서 [[왈츠]]를 추는 것을 본 수신사 일행은 그야말로 경악했으며, 김기수는 일본 육군경의 딸이 서슴없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고 인사한 것을 두고 예절이 무너졌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학교들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인체 해부실습을 하는 걸 보고 질색하면서 '성현의 말씀은 다 접어두고 부국강병의 술책만 숭상하고 있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189210|출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