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후미 (문단 편집) == 역사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f/Suhumi_Prokudin-Gorskii.jpg/1160px-Suhumi_Prokudin-Gorskii.jpg|1912년 수후미 전경 (컬러)]] 고대 기원전 6세기 무렵 건설된 고도이다. [[밀레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흑해 동부 연안에 건설한 식민도시 '디오스쿠리아스'(Διοσκουριάς)가 그 기원이다. 그리스 로마 시기 [[콜키스]] 지역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중 하나였으나, 8세기 이슬람 세력의 침력으로 황폐화되었다. 이후 12세기 압하지야 공국의 중심도시가 되어 조지아 지역과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로 다시 번성하였다. 중세 시대 이름은 '츠호미' 혹은 '츠후미'(ცხომი/ცხუმი)였는데, 이는 인근의 스반(Svan) 언어로 '서어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힌발리]]의 어원도 이와 동일하다.] 이후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 공화국]]에 속하였다.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압하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소련 붕괴 직전 1989년 수후미의 인구는 11만명으로 [[트빌리시]], [[쿠타이시]], 루스타비, [[바투미]]에 이은 조지아 제 5의 도시였으나, 압하지야 전쟁 이후 조지아인이 대규모로 추방되고 인구가 급감하여 2018년 기준 인구는 6만 5천명 수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