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숙종(고려) (문단 편집) ===== 남경 천도 논의 ===== 숙종 재위기에 지금의 서울인 남경(南京)[* '한양부'에서 '남경'으로의 승격은 부왕인 [[문종(고려)|문종]] 때이다.]으로 수도를 이전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 풍수지리 전문가였던 김위제가 비기(秘記)인 《[[도선#s-1.4|도선기]]》(道詵記), <[[도선#s-1.4|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도선#s-1.4|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인용하여 국토를 저울로, 남경을 저울추에 비유하며 천도를 주장했다. 그리고 1104년에 [[남경 별궁]]이 준공되어 숙종이 직접 남경에 행차하기도 했으나, 이 때 남경은 서경처럼 지역 세력이라든지 지역 중심지로서의 중요성이 크지 않아 정치적 논의만 거친 채 흐지부지 끝났다.[* 다만 괜히 남경으로 승격된 건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수도 한성이 위치했었을 만큼 지리적으로는 요충지이긴 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가까운 위치에 수도 개경이 위치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자원을 흡수당하느라 잠재력에 비해서는 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조선시대에 남경의 후신인 한성으로의 천도가 이루어진 후에는 역으로 개성이 인적자원 등을 한성에 다 뺏기게 된다.] 다만 당시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여 왕궁 조성은 했는데, 그게 현재의 [[청와대]] 자리다. 300여년 뒤 태조 이성계가 이 터를 둘러보곤 그 남쪽에 [[경복궁]]을 지었다. 김위제가 이런 것까지 보았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쨋든 그의 [[풍수지리학]]적 분석처럼 조선시대부터 남경이 수도가 되고,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남경 별궁]]의 자리가 [[청와대]]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맞기는 맞은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