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숙종(조선) (문단 편집) === 국방 정책 === 숙종은 방위 체계를 수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듯 손 봤다.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오군영]] 제도가 확립된 것이 숙종 대로 평가되는데 방어 체계가 수도 중심으로 재편된 김에 [[북한산성]]을 축성한다. 상대적으로 [[한양도성]]은 성곽이 너무 길어 수비하기가 어렵고, [[강화도]]는 바다에서 접근하는 적을 못막으며, [[남한산성]]은 [[한강]]을 도강하는 위험함이 있다는 이유였다. 실록에 보면 이 과정에서 신료 사이에 의견이 크게 갈려 싸우게 되는데 숙종은 이미 마음을 먹어놓고선 계속 논의토록 지시한다. 아마도 [[청나라]]의 간섭[* 조선은 [[정묘호란|호]][[병자호란|란]]의 패배로 인해 전쟁 준비가 일절 금지되어 있었다. 산성의 축성과 수리는 청나라 사신이 꼬투리 잡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문제였다. 자세한 것은 [[병자호란#s-3]] 참고.] 때문에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1711년]]에 청에서 해구[* 실록에 해구로 적혀있는데 [[왜구]]로 보거나. 이양선으로 보기도 한다.]의 준동이 있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군사와 도성 백성들을 동원하여 그 험하디 험한 [[북한산]]에[* 봉우리를 이어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성벽을 따라 돌면 [[북한산]] 봉우리를 전부 돌아볼 수 있다. 이런 험한 산지에 성을 쌓고 보초가 기거하는 성랑을 만든 고생은 답이 없을 수준이다. 오늘날 성곽을 복원하는데 있어 [[헬기]]가 돌을 실어 나르는데 이를 등짐(사람이 하나하나 짊어서 옮기는 작업)으로 일일이 올렸다고 생각하면 그 고생이 짐작될 것이다.] 6개월 만에 성을 쌓아 올리고 [[행궁]]을 만든다. 이후에도 [[북한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방비가 허술하다며 [[탕춘대성]]을 만들고, 크고 수비하기가 어렵다고 한 [[한양]] 성곽을 고치고,[* 여담이지만, 숙종 시대에 축성된 부분은 돌들이 하나같이 [[크고 아름답다]]. 기본 가로세로 2[[자(도구)|자]](60cm)인 돌들이 한몸처럼 꽉꽉 짜맞춰져 있으니, 조선 전기에 축성된 부분이 [[짱돌]]처럼 보일 정도.] 허술하고 멀다고 한 [[강화도]]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김포시|김포]]에 문수산성을 축성했다. 또한 추가로 [[개성시|개성 개풍군]]에 있는 [[대흥산성]]을 고쳐 쌓고, [[평안도]] [[남포시|남포]]에 황룡산성, [[강화성]], [[경상북도]] [[칠곡군|칠곡]]에 [[가산산성]], [[황해도]] [[해주시|해주]] 수양산의 수양산성, [[평안북도]] 염주의 용골산성, [[충청북도]] [[청주시]]의 [[상당산성]]을 증개축하고, [[남한산성 행궁]]을 증축한다. 이래저래 성도 많이 짓고 [[북한산성 행궁]]과 [[남한산성 행궁]]에는 각각 행차하여 잠시 지내고 오는 등 재위 동안[* 재위 기간도 긴편이었다.] 수도 방어에 각별한 관심을 크게 기울였다. 이때 만들어진 수도 방어 체계는 [[영조]]가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경리청을 폐지하고 [[정조(조선)|정조]]가 [[장용영]]을 만드는 등 약간의 변화를 거치긴 하지만 [[고종(대한제국)|고종]] 때까지 유지되었고 덕분에 이때의 산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손실된 내부 시설을 제외하고 대부분 잘 남아있다. 또 한꺼번에 [[무과]] 합격자를 1만 8천여명이나 뽑아서 국방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비변사]] 당상 중 구관당상을 제도화 한 '''8도구관당상제(八道勾管堂上制)'''를 전면 도입하였다. 각 도에 1명의 구관 당상관이 임명되어 군무를 분담하여 그 도의 장계(狀啓)와 문부(文簿)를 처리한 것이다. 또한 [[청나라|중국]]에서 [[삼번의 난]]이 터지자 예의주시하며 [[북벌]](北伐)을 준비하는 구절이 실록에 여러번 등장한다. 결국 흐지부지 하긴 했지만...[* 이때 갑인예송 이후 정국을 주도하던 남인 측에서 북벌을 주장하며 군사권 장악을 시도했다. 이에 숙종은 남인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이는 경신환국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