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숙주나물 (문단 편집) == [[신숙주]] 유래설 == 녹두로 만든 나물인데 굳이 숙주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나물이다. 그런데 어원이 알려진 것보다 꽤 복잡하다. [[신숙주]]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사육신]] 사건 때 [[단종(조선)|단종]]에 대한 충성을 지킨 사육신들과 달리 신숙주는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왕위찬탈]]에 기여했기 때문에 [[세종대왕]]과 [[문종(조선)|문종]]의 유지를 어긴 변절자로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녹두나물이 변절한 신숙주처럼 '''쉽게 맛이 간다는 의미에서''' 신숙주를 미워한 백성들이 녹두나물에 '숙주'라는 이름을 붙여서 신숙주를 비난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숙주나물로 [[만두]]소를 만들 때 이걸 짓이기기 때문에 숙주나물을 짓이기면서 신숙주를 짓이긴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이것이 흔히 알려져있는 숙주나물의 어원이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신숙주(申叔舟)가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하여 죽게 하였기에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여 이 나물을 숙주라 이름 붙였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이 나물의 이름이 신숙주에게서 유래한 게 맞는지는 확실치 않다. 녹두나물을 부르는 옛 문헌의 표기는 '두아채(豆芽菜)' 또는 '녹두장음(菉豆長音)'[* 여기서 '-長音'은 이두식 표현으로, 長은 뜻으로 읽고 音은 음으로 읽는다. 따라서 한글로 옮기면 '-길음'이 된다(즉 '녹두길음'). 길음 또는 길금은 어떤 씨앗을 싹틔운 것을 가리키는 말로, 콩나물의 옛말인 '콩길음'이나 맥아의 순우리말인 '보리길금'에서도 볼 수 있다.]이다. 두아채라는 표기는 [[원나라]] 때 문헌인 <거가필용(居家必用)>이란 책에 나오는 표기이다. 이 책에 의하면 두아채는 녹두를 씻고 물에 가라앉혀 불린 후 항아리에 넣고 물을 끼얹으며 싹이 한 자쯤 자라면 껍질을 씻어내고 뜨거운 물에 데쳐 생강·식초·소금·기름 등을 넣고 무친다고 한다. 현재에도 숙주나물은 이렇게 만든다. 그런데 녹두장음이라는 표기는 1808년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나온다. 즉 조선시대 문헌에서 [[한글]]로 '숙주나물'이라고 부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기록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숙주나물' 이라고 언제부터 불렸는 지는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 숙주나물과 [[신숙주]]를 처음으로 엮은 최초의 한글 기록은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편찬한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572675&cid=46672&categoryId=46672|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1924년 위관(韋觀)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저술한 한국의 요리책으로, 제목은 '조선요리를 만드는 법으로서 이만한 것은 둘도 없다.'는 뜻이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의 『정조지(鼎俎志)』를 바탕으로 새로운 조리법 및 가공법이 추가되었으며, 서양, [[중국]] 및 [[일본]] 요리법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에서 나타나는데, 원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숙주라하는것은 우리나라세조님금ᄯㅐ에 신숙주(申叔舟)가 여섯신하를 고변(告變)하야 죽인고로 미워하야 이나물을숙주라한것이니 이나물을 만두소를너을적에 짓익여늣는고로 신숙주를 이나물익이듯하자하야서 숙주라하얏나니 이사람이나라를위하야 그리하였다하나 엇지 사람을죽이고 영화를구할가보냐 성인군자는 결단코아니하나니라[*현대어_풀이 "숙주라 하는 것은 세조 임금 때 [[신숙주]]가 여섯 신하를 반역으로 고발 하여 죽였기 때문에 이를 미워하여 나물 이름을 숙주 라고 한 것이다. [[만두]]소를 만들 때 이 나물을 짓이겨 넣으며 [[신숙주]]를 나물 이기듯 하자 하여 숙주라 작명 한 것이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고 하지만 어찌 사람을 죽이고 영화를 구할 수 있겠는가. [[성인군자]] 이라면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용기 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서울, 라이스트리, 2019, p.145 사육신을 고변한 당사자는 김질이라는 인물이었고 신숙주를 비난하는 소설이 [[일제강점기]]에 널리 유행했던 점을 고려하면 숙주나물이라는 단어가 신숙주 당대의 백성들이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에서 쓴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숙주나물의 어원이 정말로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였다고 해도 기록상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19세기 이후에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두문불출[* [[황희(조선)|황희]]와의 연관성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이나 [[행주치마]]가 사실 두문동이나 [[행주대첩]]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사실이야 몰라도, 신숙주의 후손들인 [[고령 신씨]]와 [[계유정난]]때 도움을 받은 가문들은 숙주나물을 '''녹두나물'''이라 부르고, 며느리나 배우자에게 녹두나물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시장에 가서 녹두나물을 달라고 해서 가게에서 못 알아듣었다거나, 집안에서 '숙주나물'이라고 칭하다 집안 어르신들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령 신씨 집안에서는 [[제사]]상에 숙주나물을 올리지 않는다고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