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수이성비판 (문단 편집) ===== (들어가기에 앞서) 순수이성비판 선험적 논리학의 이해를 위한 배경 =====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선험적 논리학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사 전체를 통과하는 '''형이상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 칸트가 선험적 논리학에서 논하고자 할 ''''지성''''[* 본문은 최재희역의 순수이성비판을 사용하고 있고, 해당 서적은 독일어 'Verstand'를 오성(悟性)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근래 한국 철학계에서 '''지성(知性)'''이라는 표현을 더욱 선호하는 바, 이에 지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은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주제로서, '''형이상학'''은 그 '''지성''' 혹은 '''이성'''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 시작하였는데, 그는 초기에 자연과 사물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연에 대한 여러 정보와 지식들이 어떤 '''틀'''에 기준하여, 정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 많은 지식들은 '''이성의 규칙적인 작용'''[*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언급하는 바,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 4원인설을 이성의 규칙적인 작용이라고 논한적이 없다. 다만, 그것이 자연만물에 적용되는 원인이라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이 인간의 지혜에 의거해 발견되는 것은 명확한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이성의 작용방식과 관계되어 있음을 그 역시도 유추할 수 있다.] 에 의해서 발생하고, 이는 인간의 이성이 어떤 규칙에 의해서 작용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상기한 내용에서 첫번째 문제인 '''어떤 틀'''에 대한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이라고 불리는 연구서에 서술되어 있으며, 이는 이후 논리학 및 범주론이라는 철학의 연구 분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문제인 '''이성의 규칙적인 작용'''에 대해서는 '''형이상학'''이라는 연구서에 서술되기에 이른다. 이후 서양 철학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이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근대철학에 이르러 '''인식론'''이라는 형태의 학문으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수정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범주론과 이성의 규준 (흔히,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을 별도로 구분하고 서로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았으며, 후대의 철학자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입장을 따로 수정하지 않았다. 다만, 철학자들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자신들의 사상으로 전환시킬 따름이었다. [* 중세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목적인을 하느님의 창조목적의 개념과 연결시켜 버렸고, 이는 종래의 형이상학이 신학과 합쳐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후에 언급하겠지만, 칸트는 이 부분을 확실하게 비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및 4원인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범주론([[카테고리]])과 판단표를 간단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철학자 [[칼 포퍼]]도 여기서 말하는 칸트의 선험적 틀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Popper, Karl. "Kant’s critique and cosmolog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Routledge, 2014. 255-266.] ||<-2>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및 4원인설 || || 범주 || 1. 실체. 2. 양. 3. 질. 4. 관계. 5. 장소. 6. 시간. 7 위치. 8. 소유. 9. 능동. 10, 수동 || || 4원인설 ||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 || ||<-4> 임마누엘 칸트의 판단표 || || 구분 || 판단 || 범주 || ||<|3> 분량 || 전칭판단(보편적) || 단일성 || || 특칭판단(특수적) || 다수성 || || 단칭판단(개별적) || 전체성[* 이 표에서 전칭에 대응하는 범주가 전체성이고, 단칭에 대응하는 범주가 단일성일 것 같지만, 단일성을 문자 그대로 단일한 것이 아니라 표준 또는 단위의 의미로 이해하고, 단칭에 대응하는 전체성을 '''구체적인 것들의 전체'''로 이해한다면 이상할 것이 없다. 임마누엘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역, 2002, 박영사, 113p의 역자의 각주에서 발췌] || ||<|3> 성질 || 긍정판단 || 실재성 || || 부정판단 || 부정성 || || 무한판단 || 제한성 || ||<|3> 관계 || 정언판단 || 실체와 우유성(偶有性)[* 하나의 실체가 실존하는 특수방식임에 틀림없는, 실체에 관한 규정들을 우유성이라고 한다. 임마누엘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역, 박영사, 2002, B229, 실체지속에서 생기는 원칙 중에서 발췌] || || 가언판단 || 인과성과 의존성 || || 선언판단 || 상호성 || ||<|3> 양상 || 개연판단 || 가능성-불가능성 || || 실연판단 || 현존성-비현존성 || || 필연판단 || 필연성-우연성 ||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와 4원인설을 함께 엮으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범주란 사물들의 속성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범주는 그 자체로서 명제를 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명제란, 주어와 서술어의 종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범주는 이 가운데에서 서술어의 영역에만 취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 시계는 1946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라는 명제가 주어졌다면, 이 시계는 실체, 1946은 시간, 스웨덴은 장소, 만들어진 것이다.는 수동적 성질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성질을 의미함)나타낸다. 이와 같이, 범주는 서술어로 표현되는 사물들의 성질인 것이다. 이에 반해, 4원인설은 사물 그 자체를 이성이 인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4원인을 가리켜 직접 서술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을 이해하는 지혜의 원리'''라고 표현하였다.] 질료인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물들의 속성이요, 형상인은 그 사물이 마음속에서 그려내는 대표적인 모양세, 작용인은 그 사물이 작용하는 방식, 목적인은 그 사물이 잠재적으로 나타나게될 모습이거나 작용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인설을 이성(그의 경우에는 이것을 '''지혜'''라고 불렀으나)의 작용방식과 연결시켰으며, 그 지혜의 결과로 인식된 사물들이 '''범주'''에 의해 서술되고 논리적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칸트는 천년이 넘도록 난제로 남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과제를 한번에 묶어서 해결하려 하였다. 칸트에게 있어서 논리란 단순한 말장난이거나 수사법이 아니었다. 칸트에게서 논리란 인간의 이성이 이해한 사물들 자체가 언어를 통해서 규명되어 나타낸 형식이다. 그리고 논리는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 만들어 지며, 이성의 판단은 선험적인 것이므로, 칸트는 논리를 판단과 결부하였고, 그 결과 논리는 선험적(선험적 논리학)인 것이다. 또한, 범주란 사물들의 내용들이 이성 안에서 구분되고 정리되는 구역을 의미하였고, 그래서 범주는 사물들의 속성이 아니라 사물들을 구별하는 이성의 속성이 되었다. 칸트는 이러한 이성의 작용방식 (분량, 성질, 관계, 양상)을 일반적인 판단들과 결합시켜 먼저 정리한 다음, 이를 다시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판단이라 할 수 있는 지성의 범주로 서술한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업적을 다시 환기하고자 덧붙여 설명하자면, 서양철학사는 형이상학을 영국 방식의 경험론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방식의 합리론으로 양분되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영국의 경험론이 인간의 지성을 경험의 결과로 본 결과로서, 형이상학의 전통을 벗어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트는 이 분열을 다시 결합시켰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국의 경험론의 정신 하에 합리론 탐구가 가능함을 보이고자 하였다. 영국의 철학자들은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흄]]이 그렇지만) 지식이란 오직 경험의 한계 내에서,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 나타난 결과이며, 논리란 그것을 정리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때 형이상학적 실체니 원리니 하는 것은 경험으로 파악되는 것이아니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하지만, 칸트는 경험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탐구만이 적법하다는 것, 또 논리가 경험을 정리하는 것으로 보앗다는 점에서 경험론의 전통을 따르나, 경험론자와 다르게 우리의 논리에는 (칸트가 정리하기 전까지는) 경험과 독립적으로 알 수 있는 그것들을 종합하는 감성과 지성의 원리가 존재하며, 이들은 경험되는 것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의 범위 안으로 탐구를 제한하더라도 또 다른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철학은 그러한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의 모토이며, 이 중 지성에 대한 논의가 '''선험적 논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선험적 논리학은 순수이성비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매우 난해하며 또한 난잡하다. 이는 칸트가 10년 넘게 기록한 자신의 연구를 1년 안에 정리하면서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간행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정리된 저서들은 목차가 먼저 만들어져서 뼈대를 이루고 글의 내용들이 살을 이루어서 만들어 진다. 하지만, 이 책은 살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목차를 집어넣어 뼈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의 저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매우 혼란을 겪으며, 이는 연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칸트 또한 이러한 부분을 어느정도 감안하여 이후에 형이상학 서설이라는 책을 냄으로서 보다 간략한 설명을 시도하였고, 해당 저서에서는 일단 이 책으로 대략적인 얼개를 잡은 다음 구체적인 논의를 순수이성비판에서 보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특히 선험적 논리학은 칸트가 부연설명을 2중 3중으로 해놓은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설명이 매우 난잡해진다. 칸트 역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재판(再版)으로 내놓았지만 오히려 설명이 더 늘어나 버렸다. 따라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괜히, 근대 서양 철학사 최고 난이도 책이 아니다.] 선험적 논리학은 크게 1편 개념의 분석론과 2편 원칙의 분석론으로 나뉜다. 1편의 주요 내용은 범주에 대한 형이상학적/선험적 증명이고, 2편은 12범주의 네 대분류에 맞게(양, 질, 관계, 양상) 각각 따라나오는 선천적 종합 판단들이다(양-직관의 공리, 질-지각의 예취, 관계-경험의 유추, 양상-경험사고 일반의 요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