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수이성비판 (문단 편집) ===== [anchor(코페르니쿠스적 전환)]코페르니쿠스적 전회 =====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또는 전환)라는 이 유명한 단어는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사용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순수이성비판의 재판본의 머릿말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 표현은 적절히 사용된 것이다. 종래의 철학자들은 진리의 기준이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외부에 있다고 여겼고, 이는 사물들로부터 발생되리라 믿었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 즉 주체는 고정된 자리에서 사물들을 관찰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칸트는 사물은 고정되어 있고, 우리 자신이 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사물의 모습은 우리가 보는 시점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인식이 고정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변화한다고 할 지라도 그곳에는 원칙과 규칙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그래서 칸트는 기존의 철학자와는 다른 시도를 하는데, '''[[형이상학|사물을 탐구해서 주체까지 이해]]'''하려고 했던 철학의 흐름을 뒤집고 '''[[인식론|주체를 이해해서 사물까지 이해]]'''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외부세계를 연구해서 앎을 탐구하던 기존의 철학에 반대하고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주체 자신'''의 인식 틀(시간, 공간 등)로 연구방향을 전환했다. 이것이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중심으로 했던 천문학(천동설)을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천문학(지동설)으로 전환시킨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칸트는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하였다.[* 강영안,'칸트의 형이상학과 표상적 사유',서강대학교 출판부,2009,p56]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최초 사상에 관해서도 사정은 같다. 그는 모든 성군이 관찰자의 주위를 돈다고 가정했을 때 천체운동의 설명이 성공 못한 이후로, 이제야 관찰자를 돌도록 하고 도리어 별들을 고정시켰을 때에 설명이 더 잘 성공할 것이라는 기도(企圖)를 하였다. 대상의 직관에 대한한 형이상학에 있어서도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방식의 기도를 할 수 있다.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2002, 재판의 머릿말 가운데에서 발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