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원왕후 (문단 편집) == 개요 == >이렇게 망극(亡極)한 일을 당한 속에서도 5백 년 [[조선/왕사|종사(宗社)]]를 부탁할 사람을 얻게 되어 다행스럽소. [[철종(조선)|주상]]은 [[영조|영종대왕]](英宗大王)의 혈손(血孫)으로서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고 오랫동안 [[강화도|시골]]에서 살아왔으나, 옛날의 제왕(帝王) 중에도 민간에서 생장(生莊)한 이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빠짐없이 알아서 정사(政事)를 하면서 매양 애민(愛民)을 위주로 하여 끝내는 명주(明主)가 되었으니, 지금 주상도 백성들의 일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오. > >백성을 사랑하는 도리는 절검(節儉)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비록 한 낱의 밥알이나 한 자의 베(布)도 모두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만일 절검치 않는다면 그 피해는 즉각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백성들이 살 수 없으면 나라가 유지될 수 없으니, 모름지기 일념(一念)으로 가다듬어 '애민(愛民)' 두 글자를 잊지 마오. > >지난날의 공부가 어떠한지는 비록 알 수 없지만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옛일에 어둡고 옛일에 어두우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니, 아무리 슬프고 경황없는 중일지라도 수시로 유신(儒臣)을 접견하고 경사(經史)를 토론하여 성현의 심법(心法)과 제왕의 치모(治謨)를 점차 익힌 연후에라야 처사(處事)가 올바르게 되는 것이오. 위로 종사(宗社)의 막중함을 생각하고 아래로 백성들의 곤고(困苦)를 보살펴 공경하고 조심하며, 검소하고 근간하여 만백성이 바라고 우러르는 뜻에 부응(副應)토록 하오. 임금이 비록 극히 존귀(尊貴)하다고는 하지만 본래부터 조정 신하들을 가벼이 여기는 법은 없으니, 대신들을 예(禮)로써 대하고 대신들이 아뢰는 데에는 옳지 않은 말이 없을 터이니, 정성(精誠)을 기울여 잘 듣고 마음속에 새겨두기 바라오. >---- >[[조선왕조실록]] [[철종(조선)|철종]]실록 즉위년(1849) 6월 9일자 3번째 기사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정비로, [[김조순]]과 심건지의 맏딸인 청송 심씨의 딸이다. [[고종황제]] 때 황후로 추존되어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라는 시호를 받아 [[대한제국]] 추존황후로서 종묘에 올라갔다. 워낙 아버지 [[김조순]]이 순조 대의 권신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순원왕후 자신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왕비로 자그마치 32년간이나 있었거니와[* [[정성왕후]]에 이어 2위] [[조선]] 역사에서 실질적으로 [[수렴청정]]을 2번이나 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상 [[헌종(조선)|헌종]], [[철종(조선)|철종]]기 20여 년은 순원왕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정희왕후]]가 2번 수렴청정을 하긴 했는데 [[예종(조선)|예종]] 때는 얼마 가지 않아 수렴청정을 거뒀으므로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는 이 시기를 순원왕후 독재 시대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