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의 (문단 편집) == 생애 == 매부 [[진군]](陳羣)으로부터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다양한 학문을 해 배운 것을 모두 흡수했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때는 신중하고 치밀했으며, [[사마의]](司馬懿)가 그를 보고 기이한 인재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연 순령군의 아들이로구나. 근래에 원간을 만났더니 역시 효경의 아들이라 할만했다. 그리고 그를 발탁해 산기시랑으로 삼았다. 이후 [[종회]](鐘會)를 "[[역경]]에는 호체가 없다."고 꾸짖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시 연간[* 240 ~ 249년이다.]에는 [[호소#s-2]](胡昭)를 [[조엄]](趙儼), 황휴(黃休), 곽이(郭彛), [[종육]](鍾毓), 유애(庾嶷), [[하정(서진)|하정]](何楨)과 함께 천거했다. 260년에 [[조모(삼국지)|조모]](曹髦)가 살해됐을 때는 진태가 오지 않자 [[사마소]](司馬昭)의 명으로 진태를 불러 왔다. 당시 사마소의 앞잡이가 된 순의를 보고 진태는 "외숙부는 이제 저보다 못난 인간입니다." 라고 디스했다고. 264년 3월 17일 상서좌복야에서 사공으로 승진했는데, 나이 60을 넘어서도 효성이 극진하여, 같은 해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관직을 내려놓고 거의 실성할 듯했으므로, 나라에서 이를 칭찬했다. 이에 사마소가 황제에게 아뢰어, 한의 태부였던 호광(胡廣)의 고사에 따라 사공으로 복귀했고, 7월에 사마소의 명을 받아 [[양호(삼국지)|양호]](羊祜), [[임개]](任愷), 경준(庚峻), [[응정]](應貞), 공호(孔顥)와 함께 예의를 제정한다. [[사마충]](司馬衷)의 아내를 결정할 때 행태자태부로 있던 순의는 271년에 [[가충]](賈充)의 아내 [[곽괴]](郭槐)에게 돈을 받고 '''[[가남풍]](賈南風)이 사마충과 결혼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며, 시중, 상서령, 거기장군을 지내던 가충, 시중, 중서감을 지내던 [[순욱(서진)|순욱]](荀勖),[* 순의의 7촌 조카다.~~다만 [[순욱|같은 가문의]] [[순유|이 2명]]도 7촌 숙질간이였는데~~] 월기교위 [[풍담]](馮紞)과 더불어 서로 한 무리의 벗이 되자 조정이나 민간에서 그들을 미워했다고 한다. 274년 4월 28일 임회공으로 있다가 죽으니 시호는 강공(康公)이다. 아들이 없어서 고조카인 순서가 임화공의 작위를 물려받았으나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고 동진 시절엔 별다른 인재들을 배출하지 못한채 동진이 망하고 나서 임화공의 작위를 박탈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