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정효황후 (문단 편집) ===== 6.25 전쟁 이후 ===== 정릉에서 지내는 동안(1953년)에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부통령]]이 직접 정릉의 사찰(경국사)도 볼 겸 인수재로 찾아와서 20분 동안 순정효황후와 회견(안부를 묻는 정도[* 출처 : 1953년 11월 15일자 동아일보 2면.])한 일도 있었고[* 출처 : 1953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 2면.] 1955년에는 좀도둑이 들어 현금 4천환과 금반지 3개와 전화기를 절도해간 사건이 있었다.[* 출처 : 1955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 3면.] 1956년 12월 22일자 경향신문 1면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1945년 11월부터 구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구황실재산사무총국[* 이 기관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으로 개편된 뒤 1999년에 [[문화재청]]으로 승격된다. 즉, 문화재청의 전신 기관이다. [[http://contents.archives.go.kr/next/organ/organBasicInfo.do?code=OG0036233|#]], [[http://www.cha.go.kr/korea/introduce/history.jsp|##]]]에서 [[http://budget.na.go.kr|국회 예결위]]에 심의를 받으려고 가지고 나온 자료를 보면 부족한 돈이 있어도 국고를 지원받지 않고[* 물론 남은 돈을 국고에 채워넣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창경원, 덕수궁 등에서 걷은 관람료(약 3억환)를 황족의 후예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데 이때 순정효황후에게는 __생활비로 매월 34만환을 지급__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국회의원의 세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나중에 1958년 7월 31일자 경향신문 1면에 나온 30일 오전에 열린 국회 예결위에서 나온 구황실재산특별회계에 대해 [[정낙훈]](자유당), [[서범석(1902)|서범석]](민주당), [[민관식]](민주당), [[문종두]](무소속) 의원이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의 윤우경 사무국장에게 '순정효황후가 [[낙선재]]로 되돌아가겠다고 요구하였는데 어떻게 하였는가' 하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을 따르자면 __생활비로 매월 46만환을 지급__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1959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에 나온 기사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의 윤우경 사무국장이 순정효황후의 말들을 날조하는 등의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어 23일에 열렸던 [[http://finance.na.go.kr|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선 구황실재산관리국의 예산안 심의가 보류되고 국회의원들은 사무국장을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큰 소동이 있었다. 이후 1959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 1면의 기사에 따르면 보류된 심의가 12월 6일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계속되었고 여기에선 윤우경 사무국장이 법대로 재산관리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대통령의 분부에 따라 독단적으로 처리했고 순정효황후를 정릉에 모신 것이 순정효황후의 뜻도 아닌데 순정효황후가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위증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또 여기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닉슨 부통령 방문 당시 구황실재산사무총국에서 순정효황후가 계시던 인수재에 고급 물건들을 잠시 들여놨다가 방문이 끝나고 다시 가져갔다는 말도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