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종(고려) (문단 편집) === 사후 === 별다른 업적없이 붕어하여 그의 동생인 [[선종(고려)|국원공 왕운]]이 왕위에 오른다. 자식에게 물려준 것도 아니고 자식에 대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봐서 병약한 몸 때문에 후사도 낳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사도 짧다. * 8월 * 갑신일. 문종을 경루에서 장사지냈다. * 경자일. 왕이 신봉루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했다. * 겨울 10월 * 초하루 계유일. 회경전에서 사흘동안 도량을 열고 승려 30,000명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 갑신일. 왕이 자신의 동생인 왕운을 수태사 겸 중서령으로 올려주고 식실봉 1,000호를 덧붙여주라고 지시했다. * 왕은 젊어서 지병이 있었는데 선왕의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병이 더욱 심해졌다.(王小有疾 居廬哀毁 疾益篤) * 을미일. 친동생 국원공 왕운으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맡아보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짐(朕)은 [[문종(고려)|군부(君父)]]의 유언(遺言)을 받들어 [[고려|방가(邦家)]]의 중기(重器)를 손에 쥐었다. 매사에 조심하여 부탁받은 권한을 조심히 살폈다. > >군공(群公)과 장구(長久)의 책략을 세우고, 조종(祖宗)의 경사를 누리고, 조상의 공로를 빛나게 하고자 했다. > >그러나 상을 치루던 중 너무나 슬퍼하니, 걱정이 병이 되었다. 때가 흘러 계속 누적되니,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 이번 겨울 초에 대참(大漸)에 이르렀다. 바람 앞 등불같은 몸이 어떻게 환기(幻期)[* 대참(大漸), 대기(大期)와 같은 뜻으로 죽음의 때, 죽음의 시기를 의미한다.]를 견더낼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사직]]의 도(社稷之圖)는 반드시 예속에게 이어져야 한다. 지금 모제(母弟)[* 순종과 선종은 모두 [[인예태후]]의 자식이다.]인 수태사(守太師) 중서령(中書令) 국원공(國原公) 운(運)은 다능하고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다. 성덕(盛德)이 날로 갈수록 커지고 농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형정(刑政)의 이로움과 병폐를 마음 깊히 알고 있으니, 구오지존(九五之尊)[* 유교 서적 《[[주역]]》에 나오는 표현으로 '올바른 제위(帝位)'를 의미한다. 순종의 4대조인 태조 또한 자신의 옥좌를 '구오통림의 극(九五統臨之極)'으로 표현했다.]에 오른다면 억조(億兆) 명의 소망을 채울 것이다. > >그러니 구소(柩所)[* 관을 안치한 곳. 여기선 빈전(殯殿)을 의미한다.] 앞에서 군권(君權)을 가지도록 하라. 무릇 국조(國朝)의 상벌대사(賞罰大事)는 모두 사군(嗣君)의 뜻을 따르라. 밖에 있는 주진(州鎭) 관원(官員)들은 본군(本郡)에서 거애하고 자신의 관사를 떠나지 마라. 상복의 제도는 하루를 달로 계산하고, 산릉의 제도는 검약하게 하라. > >오호라(於戱)! 생에는 굴곡이 있으니, 아무리 험난해도 대의를 좇아야 한다. 사람 중 누가 사라지지 않는가, 다만 슬픈 것은 내 삶이 짧다는 것이다. > >오로지 몇몇 고굉(股肱)과 중외(中外)의 문무(文武)들이 충력(忠力)을 다하여 내 [[선종(고려)|친왕(親王)]]을 보좌하고, 보력(寶曆)이 무궁(無窮)하도록, 환구(環區)[* 바다로 둘러싸인 곳. 여기선 고려를 의미한다.]를 잇는다면 짐(朕)이 눈을 감아도 어떤 유감이 있겠는가? >---- > - 《고려사》 <순종 세가> 중. 순종의 유조(遺詔).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려 순종 성릉.jpg|width=100%]]}}} || |||| '''{{{#670000 순종의 무덤인 성릉의 모습}}}'''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