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천시/역사 (문단 편집) === [[조선시대]] === 태종 13년, 군현제가 도입될 때, 순천읍 지역이 [[도호부|순천도호부]]로 개편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8도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전라도의 중심지역이 [[전주시|전주]]와 [[나주]]였지만 전라좌도[* 당시엔 수도 한성에 있는 왕이 보는 입장에서 좌우를 나누었기 때문에, 삼남 지방은 북쪽을 기준으로 하여 그려지는 일반적인 지도에서 보았을 때와 달리 동쪽이 좌도, 서쪽이 우도가 되었다. 전남의 남동부인 [[여수시|여수]]에 세워진 수영의 이름이 [[전라좌수영]]이라 붙여진 이유도 이와 동일.]지역에서는 제법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http://sillok.history.go.kr/id/kda_40007004_002|세종실록지리지 중에서 순천도호부 내용]] 이후에도 순천도호부라는 이름이 몇번 등장하지만 실록내용을 조회해 보면 [[부(행정구역)|순천부]]와 혼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이후에는 쭉 순천부로 등장한다.[* 근데 '도호부' 자체를 줄여서 '부'라고 하기도 했다. 도호부의 수장인 '도호부사'도 고을 이름 뒤에 붙일 땐 '부사'로 줄여서 대부분 'XX부사' 등으로 적었다. 당시 순천의 수장을 '순천부윤'이 아닌 '순천부사'라고 불렀던 것을 보아 쭉 도호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별칭은(별호라고도 함) 평양(平陽)으로 --평안도 평양은 平'壤'-- 여러번 강등과 복권을 겪은 역사도 있다. 여담으로 태종실록에 여러번 나오는 유배를 간 코끼리 이야기에서 이 코끼리가 갔던 곳이 순천부에 속한 [[장도(섬)|장도(獐島)]].[* [[여수시]] [[율촌면]]에 있는데, 현재는 매립으로 인하여 육지화되었다. 한편 한자까지 똑같은 [[보성군]] [[벌교읍]]의 장도는 동시대에 낙안군 소속이며, 현재는 보성군 벌교읍 [[장도리]]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5003_004|태종실록 중에서 순천부 장도(獐島)에 방목중인 길들인 코끼리를 육지로 내보내게 하였다는 내용]] 1397년 오흔인 현령이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대한 거부로 인해 독립현이었던 여수현이 1414년에 [[https://www.yeosu.go.kr/www/yeosu/past/history/joseon|연안 도서를 독자의 군현으로 편제하기보다는 수군 진지로 편성하고자 하는 방침]]으로 돌산현이 폐현되어 순천도호부로 편입되어 여수주민들이 1897년 여수군 독립이 되기 전까지 5백여년동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09542&cid=51950&categoryId=55234|삼복현 삼파현]]등 갖 가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이 현재 행정구역으로 해룡면 신성리 해안가에 일명, '''왜교성'''이라고도 불리는 [[순천왜성]](順天倭城)을 건설하였다. 이 순천왜성은 1598년에 사륙병진작전에 따라 조명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일본군에 매수된 명나라 육군의 비협조와 명나라 수군의 패배로 결국 함락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왜교성 전투]]에 대해 그동안 조명이 잘 되지 않았었다. 순천시에서는 순천왜성 표지판을 세워 그 위치를 알리기는 하였으나 보존 상황이 매우 열악한 편이다. 1895년에는 남원부 순천군으로 이듬해 전라남도 순천군이 되었고 "1896년 순천군 도서지역은 완도군과 지도군(현 신안군)과 함께 돌산군으로 설치.분리되었고 1897년에 반도지역은 용두면(현 해룡면)을 제외하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09542&cid=51950&categoryId=55234|여수군]]으로 설치.분리되어 군역(郡域)이 대폭 줄어든 동시에 바다와 별로 관계 없는지역이 되었다"고 [[http://ebook.suncheon.go.kr/fcatalog/ecatalog5.jsp?Dir=114&catimage=&eclang=ko|순천시사]]내용에서 나와 있지만 실제 순천시의 관할해역은 [[순천만]]일대와 [[해룡면]]의 [[광양만]] 일부분 해역[* 1897년 순천에 잔류된 용두면이 절반내지 전부가 여수군으로 되었을 경우 광양만에 접하는 부분은 더 줄어들거나 없어졌을것이다.]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1908년]]에 일제에 의해 실질적인 권한을 빼앗기고 겉모습만 유지된 [[대한제국]] 당시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을 통해 순천과는 별도의 지역으로 존재하던 [[낙안군]]을 둘로 나누어 현재의 [[벌교읍]]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성군]]으로 편입시키고 나머지 지역인 낙안면, 별량면, 외서면을 순천으로 편입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낙안군은 해체가 되었고 그 중에서 절반이 순천시의 역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벌교와 낙안은 분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진 이후에도 같은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다. 낙안군의 전반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벌교읍]] 문서에 잘 서술되어 있으므로 이쪽을 볼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