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화군 (문단 편집) === 최후 === 결국 부친 [[선조(조선)|선조]]도 계속된 아들의 범죄를 아무리 아들이라도 더는 참아줄 수가 없어, 금군 무사들을 보내서 순화군을 붙잡아 단단히 가택 연금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여러 추태가 이어졌는데, 안치하는 과정에서 순화군이 난동을 피우고 일을 맡은 관리들은 왕과 왕자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사실 왕조 국가에서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어쨌거나 엄연한 최고 결정권자는 군주이므로 선조가 똑부러지게 한 마디로 결단만 내려줬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겠지만, 선조는 끝끝내 자기 손으로 끝을 내긴 싫었는지 "해야 할 일을 하라."는 투의 전교만 반복한다. 오죽 답답했는지 이 과정에서 사관도 주석을 달아 선조를 비난하고 있을 정도다. >순화군을 안치한 곳을 수축(修築)하는 일로 감역관(監役官)이 이보(李𤣰)에게 고하니, 즉시 노발 대발하며 ‘만약 더 축조하여 폐문(閉門)시킨다면 해관(該官)은 무겁게 다스리고 군인은 살해하겠다.’고 하였다. 공조가 계문(啓聞)하니, 상이 일렀다. > >"어쨌든 유사(有司)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라." > >사신은 논한다. '''국가에서 한 왕자를 용서하여 남교(南郊)에다 함정을 만들고는 패역스런 짓을 저질러도 자제시키지는 못하고 늘 유사에게 미루니, 가령 유사가 [[고요(중국)|고요(皐陶)]]처럼 법대로 집행할 경우 국가에서 과연 법대로 논단(論斷)해서 뒷재앙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 10월 4일 4번째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710004_004|기사]] >순화군(順和君) 이보(李𤣰)를 안치한 곳의 담장과 자물쇠를 수리하는 등의 일을 해사에서 손을 댈 수가 없어 제때에 거행하지 못하자, 의금부에서 급급히 거행하게 할 것을 청하는 한편 낭청을 추고할 것을 청하니, 따랐다. > >사관의 주석: '''국법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한심스럽다.''' >----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 10월 5일 4번째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710005_004|기사]] 어쨌거나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갇혔는지, 순화군은 이 이후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했고 몇 년간 살인을 저지르지 못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풍(風)을 맞아 쓰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데, 실록에 적힌 정황을 보면 '''별다른 치료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1606년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906009_004|실록 기사]]에 '풍병을 앓은지 오래'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버지 선조의 귀에 들어갔음에도 별다른 후속대처가 없었던 것을 보면 선조도 이제는 순화군에게 질려서 무관심했고, 왕과 신하들 모두 한 마음으로 제발 빨리 죽기를 바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실록에 적힌 것이 이 시기인 것이지 아마 보고 자체는 병에 걸리자마자 곧바로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결국 순화군은 1년 뒤인 1607년, 26세를 일기로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다[* 이듬해 아버지 선조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지른 패악질 때문에 이미 폐서인된 상태였지만, 사후 '순화군'으로 복권되었다. 후사가 없어서 익성군(益城君)[* [[덕흥대원군]]의 손자이자 [[하원군]]의 차남.] 아들 진릉군(晉陵君) 이태경(李泰慶)이 후사를 이었으나[* 숙종 7년(1681)에 편찬한 선원록(璿源錄)을 보면 여전히 계후(繼後)라는 표시가 있다.] 왕위 추대로 인한 역모로 파양되었고, 대신 이복동생 [[인성군]]의 차남 해안군(海安君)이 후사를 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이계여(李桂餘)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순화군의 부인은 [[인조]] 때까지 살았던 듯 하다. [[정조(조선)|정조]]때 희민(僖敏)이라는 매우 분에 넘치는 [[시호]]를 받았다. 비슷한 짓을 저지른 [[후폐제(유송)|후폐제]]는 걸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분에 넘치는 시호인지 잘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