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숭덕제 (문단 편집) === 한에 오르기 전 === [[천명제|청 태조 누르하치]]의 8남으로 태어났으며 이후 후계자가 되어 후금의 제2대 군주로 즉위했다. 첫째가 아닌데도 후계자가 된 것은 홍타이지의 모후가 당시 해서여진 예허부의 수장 양기누(yangginu)의 딸이었던 몽고 저저(monggo jeje)였기 때문으로, 혈통이 좋았으며 홍타이지 본인의 운과 노력도 뒤따랐다. 부황인 누르하치는 개인의 능력으로 여진 제부족들을 통합했지만 그 집안은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었고, 정책적인 면에서 예허부의 명성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후처로 예허부의 공주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누르하치의 장남 [[아이신기오로 추연]]은 누르하치에 의해 실각하며[* 유폐 이후 사망했다. 그런데 추연이 누르하치에게 숙청당한 것은 맞지만 예허부 공주와 관련되어 [[숙청]]당한 것은 아니다.], 추연의 후손은 맏이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청대 내내 무시당했다.[* 하지만 아예 무시당한 것은 아니고 추연의 장남 아이신기오로 두두(dudu)는 [[병자호란]]에서도 활약했으며, 최강자는 아니어도 어쨌든 권력자로서 건재했다. 니칸 역시 섭정왕 [[도르곤]]과 친하게 지내며 친왕까지 올라 잘 먹고 잘 사는 등 그 아들 일곱 중 다섯에게는 모두 작위가 있었다. 다만 추연의 공에 비하여 박한 대우를 받은 것은 맞다. 참고로 이 추연의 장손 두르후(杜爾祜)로 이어지는 종갓집 이야기가 왜 100년 후의 황제인 세종 [[옹정제]]의 평전에 나오냐면, 옹정제의 황8자당 숙청 작업에서 이 집안 황족들의 [[천주교]] 입교(!)가 폭로되면서 일가의 수많은 이들이 유형 생활 끝에 순교하다가 멸문지화를 겨우 모면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홍타이지도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워 누르하치 바로 다음인 4대 버일러 자리를 얻었다.[* 홍타이지가 유목민들의 문화인 말자 상속제를 적용받아 즉위했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낭설이다. 그런 논리라면, 누르하치 붕어시에 10대였던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나 [[아이신기오로 도도]], 아니면 16남인 "말자" [[아이신기오로 피양구]]가 물려받는 게 맞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8남으로 전혀, 말자가 아니었다. 나무위키를 비롯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말자 상속제를 절대적 원칙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자 상속제는 유목민들에게는 선택지이지, 법이 아니었다. [[금나라|금]] 왕조의 [[태조(금)|아골타]] - [[태종(금)|오걸매]] 계승, [[몽골 제국]]의 [[몽케 칸]] - [[쿠빌라이 칸]] 계승, 여러 [[돌궐]]의 [[카간]]들의 사례처럼 형제 상속도 많았고, [[요나라|요]] 왕조의 [[야율아보기]]나 [[몽골 제국]]의 [[구유크 칸]]처럼 장자가 이어받는 경우 또한 많았다. 실질적으로 정복 왕조에서 말자가 상속한 사례는 전무하다고 봐도 좋을 수준이다.] 또한 다른 3명의 대버일러 중 2대 버일러인 [[아이신기오로 아민]](amin)은 누르하치의 조카였으며, 3대 버일러인 [[아이신기오로 망구르타이]](manggūltai)는 죄를 지은 어머니를 죽인 일로 누르하치한테 찍혔고, 성격 좋은 암바(大) 버일러 [[아이신기오로 다이샨|다이샨]](daišan)이 후계자로 유력했으나 이쪽은 성격만 좋지 아버지 살아있을 때엔 사생활이 난장판이어서 누르하치에게 실망만 안기던 불효자였다. 결국 4대 버일러라고는 하지만 다른 3명의 버일러들이 다들 크나큰 결점을 갖고 있었기에 후계 구도는 자연스럽게 홍타이지에게로 기울었다. 여기서 다이샨의 사생활에 대해 부연하자면, 한번은 [[도르곤]]의 모친 아바하이와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다가 아비의 여자를 탐하는 패륜아라는 논란으로 번져 집안 망신을 시키기도 했고, 또 한번은 다이샨의 조강지처 소생의 둘째 아들 쇼토(šoto)가 명나라로 도망(!)가려다가 걸려서 할아버지 누르하치 앞에 끌려왔는데 '''"아빠가 새 엄마(예허나라씨)한테 정신팔려서 형(요토)이랑 나는 조강지처 아들들인데도 신경도 안써요ㅠㅠ"''' 하며 서럽게 울자 할아버지가 아비한테 구박받는 손자를 도리어 안쓰럽게 여겨 직접 키우겠다며 거두고는 제 친자식을 반역자라고 죽이겠다 노발대발하는 다이샨을 불러다가 혼쭐을 내는 일도 있었다. 한마디로 성격만 좋지 사생활은 그야말로 아비 망신시키고 다니는 [[난봉꾼]]이었던 것이다. 괜히 누르하치가 황위 계승에서 제외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난봉꾼 다이샨의 사생활 덕에 누르하치가 직접 거둔 손자들은 누르하치의 늦둥이들과 친하게 지내며 숭덕제 홍타이지 사후 후계 경쟁에서 누르하치 늦둥이 3형제 중 최고의 실력자였던 도르곤의 지지세력이 되었고, 다이샨 역시 나이가 들어서는 황실의 최연장자로서 도르곤을 섭정왕으로 밀어주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