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숭정제 (문단 편집) === 생모에 관한 이야기 === [[파일:292px-孝純恭懿淑穆莊靜毘天毓聖皇太后.jpg]] 숭정제의 모후인 효순황태후 유씨의 초상화. 당시 정귀비의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린 태자 주상락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았다. 가끔 발작 증세가 나타나면 평소에 미워하는 유씨에게 미치광이처럼 달려들어 횡포를 부렸다. 유씨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주상락에게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곧 주상락의 발작 증세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신종 만력제와 정귀비가 유씨의 사망 원인을 알았다면 태자 주상락은 당장 폐위를 당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신종과 정귀비가 틈만 나면 신종의 3남이자 정귀비의 소생인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려 했기 때문이다. 주상락은 신변의 내시와 궁녀들을 뇌물로 매수하여 유씨가 병사했다고 꾸미고,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유씨의 시신은 궁녀의 신분으로 서산에 매장되었다. 서산은 환관이나 궁녀가 죽으면 매장되는 곳이었다. 생모를 잃은 주유검은 서리와 동리의 손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유검은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생모 유씨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생모의 죽음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무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주유검이 욱근궁에 거주할 때 시종과 나눈 이야기는 이랬다. ||"서산에 신의왕의 무덤이 있는가?" "있사옵니다." "그 옆에 유귀비의 무덤도 있는가?" "있사옵니다."|| 신의왕은 명나라 제8대 황제 헌종 [[성화제]]의 14남 주우해를 말한다. 누구도 감히 공개적으로 주유검에게 생모 유씨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자나 깨나 생모를 그리워하는 그를 가엽게 생각한 어떤 이가 신의왕 주우해의 무덤 옆에 생모 유씨의 무덤이 있다고 몰래 알려주었을 것이다. 주유검은 시종에게 은자를 내어주면서 무덤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달려가 제사를 성대히 지내고 어머니 유씨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무슨 오해를 살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였기 때문에 나설 수 없었다. 황제로 즉위한 후 숭정제는 생모 유씨를 '효순황태후'로 추증하고 시신을 광종 [[태창제]]의 경릉에 합장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유씨가 아들이 황제가 된 덕분에 사후에라도 태후 자리에 오른 것이다. 숭정제는 외조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모시고 와서 '영국태부인'의 작위를 하사했다. 그동안 핍박을 당한 외척들을 우대하여 생모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숭정제는 생모 유씨가 너무 그리웠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이별한 까닭에 생모의 얼굴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생모와 함께 지낸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이 때문에 현재 남은 유씨의 초상화도 생전이 아닌 사후에 그린 것이다.] 초상화가 장엄한 의식 속에서 정양문을 통해 황궁으로 들어올 때 숭정제는 오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로 초상화를 맞이했다.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신하들도 따라서 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