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쉬수정 (문단 편집) === [[부원지쟁]] ~ [[호법전쟁]] === 쉬수정은 1914년 육군차관에 임명되었으며 [[홍헌제제]] 때 북양군벌 내부의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한 [[위안스카이]]의 음모로 인해 잠시 탄핵당했지만 [[호국전쟁]] 이후 위안스카이가 제제를 취소하고 곧 사망하면서 별일 없었다. 1916년 돤치루이 내각이 출범하자 국무총리의 비서인 국무원비서장을 역임했고 1917년의 부원지쟁에서 돤치루이를 보좌했다. 비서장의 신분으로 돤치루이가 대총통 [[리위안훙]]을 만날 일이 있을때마다 대신 만났고 만나도 오만불손한 태도로 일관하여 리위안훙의 미움을 샀다. 이후 리위안훙 제거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1917년 7월 1일 복벽파 군벌 [[장쉰]]의 주도로 [[장훈복벽]]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는데 참가했고 1917년 [[호법전쟁]]에 참가하여 남방에 대한 강경한 토벌론을 주장하였다. 1917년 11월 [[돤치루이]]가 하야하고 [[왕스전]]이 새로운 국무총리에 임명되자 [[장회지]], [[차오쿤]], [[니쓰충]]을 사주하여 독군들의 주전 여론을 조성하여 3월에 돤치루이를 복직시켰다. 호법전쟁 도중 [[직예군벌]]의 [[차오쿤]], [[우페이푸]]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진격을 정지하자 [[장쭤린]]의 [[봉천군벌]]과 [[안휘군벌]]의 동맹을 추진하여 직계를 압박한 것도 쉬수정이었지만 [[펑위샹]]의 외삼촌이자 직계의 원로인 육건장을 봉천군 사령부에서 장쭤린이나 돤치루이의 동의도 없이 살해하여 직계와 봉계의 원한을 동시에 샀고 군비와 군수물자 배분에 있어 욕심을 많이 부렸기 때문에 장쭤린과 사이가 크게 악화되어 환계와 봉계의 동맹이 결렬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1918년 안복구락부를 조직하여 안휘계가 국회를 장악, 소위 안복국회라 불리는 돤치루이의 어용 국회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때 [[진윈펑]], [[첸넝쉰]] 등은 쉬수정에게 불만을 품고 [[쉬스창]]의 지원을 받아 기미구락부를 조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