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쉬수정 (문단 편집) === 서북주변사 ~ [[안직전쟁]] === ||[[파일:Xu_Shuzheng.jpg]]|| || 리즈시절의 쉬수정 || 호법전쟁이 흐지부지하게 끝난 이후 참전독판처참모장에 임명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다는 구실로 [[취퉁펑]]과 함께 안휘계의 사병인 6만명 규모의 참전군을 조직하였고 [[5.4운동]] 이후 국내외적으로 참전군의 존재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자 참전군을 변방군으로 개칭한 다음에 서북주변사 겸 변방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19년 10월 [[외몽골 출병]]을 단행하여 11월 17일 [[복드 칸국]]의 자치를 취소하였다. 이후 서북의 지배자로 군림하며 동북의 지배자 장쭤린의 비위를 크게 거슬렀다. 환계의 세력확장을 위해 안하무인으로 구는 행보 때문에 봉계와 직계의 공적으로 낙인 찍혀 제거하라는 목소리가 빗발쳤으나 돤치루이는 그를 끝까지 비호하며 내치지 않았다. 결국 1920년 3월, 돤치루이를 견제하기 위한 8성 동맹이 체결되고 직계의 거두 [[우페이푸]]가 변방군 견제를 위해 북상하면서 직계와 환계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대총통 [[쉬스창]]이 중재를 요청하자 봉천군벌의 수장 장쭤린이 직접 베이징으로 와서 중재에 나섰지만 입장 차이가 커서 끝내 중재가 결렬되었다. 쉬수정은 급기야 장쭤린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면서 7월 3일 [[차오쿤]], [[리춘]], [[장쭤린]]이 쉬수정 토벌을 통전, 돤치루이도 맞토벌을 통전하면서 7월 14일 [[안직전쟁]]이 발발했다. 쉬수정은 변방군을 지휘, 봉천군벌과 싸웠으나 7월 17일 베이징으로 도주하면서 변방군은 순식간에 궤멸당했고 우페이푸의 직계군이 취퉁펑 등의 주요 지휘관을 사로잡으면서 [[안직전쟁]]에서 환계는 단 며칠만에 순식간에 패배했다. 7월 19일 [[돤치루이]]가 하야하고 7월 23일 직계와 봉계의 연합군이 베이징에 입성한 후 안복구락부가 해체, 쉬수정 등에 대한 체포령이 하달되었다. 이에 쉬수정은 상하이로 도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