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슈퍼볼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16px-Super_Bowl_I_Logo.svg.png|width=100%]]}}}|| 1966-67 시즌 제1회 슈퍼볼(Super Bowl I) 대회 타이틀. 당시엔 슈퍼볼이라는 단어가 아직 쓰여지지 않아 제1회 AFL-NFL 세계 선수권 대회라고 표기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Super_Bowl_II.svg.png|width=100%]]}}}|| 1967-68 시즌 제2회 슈퍼볼 (Super Bowl II)의 엠블럼. 2회 대회부터 본격적으로 슈퍼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NFL과 AFL이 통합된 시즌은 1970-71 시즌부터다.] 다른 세 결승전과는 다르게[* 나머지 셋은 연도를 부착한다.] 각 슈퍼볼의 명칭은 슈퍼볼 다음에 회수를 붙이며 각 회수는 (초대 대회를 제외하고) 반드시 '''[[로마 숫자]]'''로 표시한다. 다만 50회 슈퍼볼은 예외로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했다. L 한 글자로 45회 대회 때부터 도입된 통일 로고의 원칙에 따라 로고를 디자인 해봤더니 도저히 간지가 안났다고... 하긴 롬바르디 트로피 옆에 L만 한 글자 떡하니 써놓으면 보기 그랬을 것이다. 1920년에 창설된 내셔널 풋볼 리그(NFL)는 1950년대까지 AAFC 등 수많은 경쟁리그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9년 결성된 아메리칸 풋볼 리그(American football league. 약칭 AFL)는 이전의 도전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NFL의 빈틈을 공략하면서 NFL의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0~60년대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NFL의 독점적 폐쇄정책으로 메이저 프로 풋볼리그의 수혜를 받지 못하던 서부, 남부 지역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이들 도시의 메이저 스포츠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착실히 세를 불려나갔다. 이에 NFL도 질세라 그동안의 폐쇄정책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리그를 확장하면서 AFL의 견제에 나서며 프로풋볼 시장의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AFL은 NFL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영역에서 착실하게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었고 NFL도 이들 AFL의 마켓까지는 침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프로풋볼 시장의 규모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그동안 듣보잡으로 취급했던 AFL의 존재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월드시리즈]]처럼 NFL과 AFL 우승팀끼리의 대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양 리그 사무국이 1966-67 시즌 1회 슈퍼볼을 출범시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회가 처음 구상되고 발표되었을 때는 "AFL-NFL 세계선수권대회"라는 다소 촌스러운 타이틀이었으나, 1967년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구단주였던 라마 헌트가 자신의 딸이 슈퍼볼(Super ball)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Super에 Ball과 어감이 비슷한 풋볼 경기의 우승 트로피를 뜻하는 Bowl을 합성해 Super Bowl이라는 단어를 쓰자고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현재의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참고로 슈퍼볼이나 프로볼이나 다 ball이 아니라 bowl인 이유는 풋볼 모양을 보고 한 게 아니라 관중이 경기장을 보고 그릇같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첫 두 대회는 NFL의 우승팀인 [[그린베이 패커스]]가 AFL 우승팀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오클랜드 레이더스]]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AFL 역시 그동안 NFL의 아성에 도전했다 사라지는 신생 리그의 한계에 봉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3회 대회에서 당시 AFL 최고의 쿼터백 [[조 네이머스]]가 이끈 [[뉴욕 제츠]]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볼티모어 콜츠]]를 꺾고 우승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4회 대회마저 AFL의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AFL의 우승이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AFL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통의 NFL에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한 것임을 증명해 냈다. 여기에 각 리그가 따로따로 드래프트를 실시함으로써 한 신인선수가 양쪽 리그에 지명을 받게 되자 신인 계약금과 연봉이 폭등하여 각 구단에 재정적 부담을 주게 되자 마침내 1970년 양 리그가 리그 통합에 합의함으로써 슈퍼볼은 이의의 여지가 없는 통합 리그의 최강자를 가리는 결승전으로서 오늘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