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모 (문단 편집) == 역사 == 스모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야요이 시대]]로[* [[일본서기]]에 スマ[[ヰ]]라는 표현으로 등장.], '''적어도 그 이전부터 스모라는 것 자체는 존재해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그때의 스모가 지금의 스모와 같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처음에는 리키시들의 맨손 힘겨루기에 가까웠다고 보여진다. 말이 힘겨루기지, 기록에 의하면 유술이나 발차기 등도 포함한 사실상의 종합 격투였다. 이것은 스모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무도나 유술, 유도 등으로도 발전했다. 기록상으로 지금의 스모의 토대가 된 것은 [[나라 시대]]로, [[속일본기]]에 찌르기, 때리기, 차기의 3가지 기술을 금하고 48가지의 기술과 예법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것이 현대의 스모의 시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부터 스모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인기 스포츠로 자리하고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스모 경기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일본 황실]]이나 귀족들이 전문 스모 선수를 육성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스모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프로 스포츠로 성장해 온 것이다.''' [[무로마치]], [[가마쿠라 시대]], [[센고쿠 시대]]에도 장려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가 현재의 씨름판의 원형을 고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이묘]]들도 직속 리키시를 육성해 손님을 접대하거나 다른 다이묘의 리키시와 대결하는 어람 시합를 열었으며, 우수한 선수는 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층에게도 보급되고 직업 리키시도 등장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급기야 [[스포츠토토|승패를 걸고 도박을 하는 등]] 사행성이 만연해지기도 했다. 사찰 건립 모금을 위해 스모 경기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쿠로후네 사건]] 당시 [[에도 막부]]가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상징으로서 자랑스럽게 보여준 것 중 하나도 스모였다.[* 뿐만 아니라 위압감을 주려 했는지 물자를 나를때 리키시들을 동원해 날랐다. 이 당시 미국인 수병들이 물자를 나르기 위해 파견된 리키시들을 보고 신기해하며 [[https://media.britishmuseum.org/media/Repository/Documents/2014_11/8_13/be5fc340_a338_45fc_9207_a3dd00e17be6/mid_01368037_001.jpg|그들의 몸을 만져보는 기록화]]([[대영박물관]] 소장)가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