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모 (문단 편집) === [[승부조작]] === 2010년 6월경에는 적지 않은 수의 선수와 스승들이 [[야쿠자]]들과 관계된[* 스모판과 야쿠자들이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야 스모협회가 수입도 많고 양지에서 제공되는 떳떳한 후원만으로도 회계상 문제없이 깨끗하게 자생할 수 있다지만 이렇게 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1년에 6번씩 대회를 치르기 이전인 50년대 그 이전엔 일본의 경제 수준도 현재같지 않았을 뿐더러 정규 대회의 흥행 수입 분배만으로는 도장 및 협회 운영이 불가능할 지경이였다. 따라서 현재는 지방 공연 정도의 의미를 가진 순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입 및 후원에 현재보다 더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걸 중간에서 브로커처럼 연결해 주던것이 시장친화적 풀뿌리조직인 야쿠자였던 것이다.] [[야구]][[도박]]에 연루되는 문제로 인기가 떨어져 [[일본방송협회|NHK]]에서 여름의 [[나고야]] 대회 생중계를 중단해버렸다. 이 [[도박]]사건으로 인하여 천황 사배라고 부르는 우승컵도 나고야 바쇼에서는 주어지지 않았고 대거 유력한 후원인 및 회사들이 나고야 바쇼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여 [[야구]][[도박]] 사건은 스모역사상 최대의 불명예 사건 중 하나로 남게 되었으며, 일본 스모 협회에서는 [[이사장]]을 교체하고 폭력단과의 연계를 단호히 근절하고자 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2010년 9월 경기부터 NHK방송을 재개했으며, 우승컵 및 각종부상들이 다시 주어지기로 발표되었다.[* 엮인 선수들은 출장 정지 및 계급 강등이라는 처벌을 받았으나, 애초에 야구도박 씩이나 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계급의 선수들이었고 가볍게 원 계급으로 복귀해 2019년 현재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선수들도 있다. --금수저--] [[그러나 이 사진이|여기까지만이었으면 단순히 선수 몇몇의 도박 관련 스캔들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야구도박사건을 수사하면서 경찰이 승부조작을 시사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구체적인 조작방법과 돈거래를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에서도 샌다~~]를 찾아냈고, 2011년 들어와서 현역 스모선수 2명과 지도자 1명이 스모경기의 승부조작을 인정함으로서 전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정기 리그전에 해당하는 2011년 3월 하루바쇼(春場所)는 취소되었고[* 이는 1946년 경기장 보수공사로 인한 대회미개최를 제외하고 1833년 시작 이래 처음.], NHK와 후지TV는 자체적으로 열던 스모대회를 취소했다. 문부과학상은 스모협회의 공익법인 허가를 취소할수 있음을 시사하고 나섰다. 스모 대회를 독점 중계해온 NHK는 스모 중계에서 완전 철수할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승부조작사건으로 인한 신인도 추락으로 NHK는 5월 스모중계권을 포기하고 대회를 방송하지 않았다. 단 정식명칭 나츠바쇼가 아닌, '기량심사바쇼'라는 이름으로 5월 경기는 매년 거행되던 형태로 국기관에서 치루어졌다. 또한 승부조작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다수의 마쿠노우치급과 쥬료급 리키시가 은퇴를 하는 크나큰 수업료를 치르게 되었다. 사실 이 승부조작사건에 연루된 리키시들도 일부는 진위를 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7월의 나고야 경기는 NHK에서 중계되었다. 앞으로 다른 예외상황이나 물의가 없는 이상 계속 NHK와 스모협회간 중계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스모가 예전에 비하여 형편없는 상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국기'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 와중에 외국인 선수들한테만 승부조작을 뒤집어씌워서 몽골·유럽 선수 다수와 한국인 유일의 세키토리였던 김성택이 강제 은퇴를 해야 했다. 물론 김성택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김성택 등의 외국인 기사들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데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혐의를 뒤집어쓴 선수들은 퇴직금이라도 받고 은퇴할래 아니면 불명예스럽게 쫒겨날래 양자택일을 해야 되는 상황에 처했고 대다수가 퇴직금 받고 나가는 쪽을 택했다. 일부 선수들만이 죄가 없다며 소송을 거는 등 저항했으나 소코쿠라이 에이키치(蒼国来 栄吉) 한 명만 무죄를 입증해냈다. 푸른 나라(蒼国)에서 왔다(来)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내몽골 출신으로(2019년 일본으로 귀화), 승소하면서 그동안의 급료를 회수하고 마에가시라로 복귀했으며 2020년까지 주료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 마쿠시타로 강등되자 은퇴, 스승의 헤야를 이어받는다.] 특히 김성택의 경우는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승부조작에 가담한 가능성이 희박한 편이다. [[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10684|링크]] 이들 중에서도 물론 조작에 참여한 사람은 많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봐도 노골적으로 조작질해댔던 일본 자국인 선수들은 다 봐주는 스모협회를 보며 조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 리키시들도 이 건으로 퇴진한 경우는 있었으나, 직접적 정황이 나타난 소수를 제외하고 별로 인기가 없는 리키시들이었으며, 수사진행 상황에서도 다수의 경우가 물증 아닌 일부인들의 진술 위주로 진행되었다. 사실 가장 의혹이 심한 선수가 장기간 오제키를 지키고 있었던 '''순혈 일본인'''인 카이오인데 이 선수에 대해선 조사조차 안 했다는 거다. 카이오는 2천년대 후반 들어 스모 팬들 사이에서도 철밥통 오제키나 공무원 등으로 불리면서 조소를 받을 정도였는데, 10년이 넘게 오제키 자리에 눌러 있으면서 1년 내내 8승 7패라는 성적으로 자리만 지키는 등 승수 맞추는데 급급해 요코즈나에 올라설 가망성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승자 윤곽이 드러난 후 강등을 막기 위해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카이오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는 경기들도 노골적으로 눈에 보일 정도였다. 스모의 계급 구조 상 오제키가 되면 2번 연속으로 반타작(15회 중 8승 이하) 승률이 되지 않는 한 계속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관례이다. 일본인 리키시들이 점점 줄고 몽골 출신 요코즈나들이 득세하는 와중에 사상 최다승을 목표로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카이오의 강등을 노골적으로 막는 시합내용이 몇번이나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이처럼 죄질로 따지면 카이오야말로 영구제명을 시켜도 시원찮을 수준의 노골적인 오제키 사수질이 계속됐는데도 정작 카이오는 제명자 명단에서 빠져있었다. 그 카이오는 2011년 7월 나고야 바쇼에서 연령과 성적부진으로 은퇴선언[* 은퇴시기가 늦어진 이유에 대하여 카이오의 고향인 후쿠오카 지역의 규슈 바쇼 수입유지가 원인이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11월 개최인 규슈 바쇼의 경우 최근 몇년 사이 관객수가 격감했으며, 그나마 남은 관객도 카이오가 은퇴할 경우, 더더욱 경기를 직접 관전할 이유가 없으므로 입장자=수입, 즉 돈과 직결해서 생각해 볼 때, 협회에서는 될 수 있으면 카이오를 오래 붙들어두려 했고, 승부조작도 그 배경에서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치요노후지를 뛰어넘는 1047승을 기록하였다.]을 하였다. 시기가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카이오의 존재는 점점 외국인 리키시에게 위축당하는 일본인 리키시를 볼 때 상징적으로 희망의 존재가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사실 훨씬 이전부터 승부조작 의혹이 제기되긴 했다.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란 책에서도 선수들이 '지면 강등'인 경기에서 기괴할 정도로 승률이 높다는 점[* 물론 강등 직전이니 없던 힘도 생길 수 있겠지만 그걸로 설명이 안 될만큼 높았다(통계적으로 48%쯤 나왔을 승률이 실제론 80%에 육박했다). 게다가 8승이 유지 기준인데 7승째인 사람이 8승을 이미 찍은(즉, __다음 판은 져도 아쉬울 거 없는__) 사람이랑 붙었을 때를 통계로 낸 것이었다.], 선수층이 좁고 양성 도장들도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 경기자체가 순식간에 승부가 지어지는 관계로 슬쩍 힘을 빼주는 정도로 간단하게 져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승부조작의 난이도에 비해 얻는 인센티브가 너무 크다는 것[* 축구나 야구의 2부 리그를 봐도 알겠지만 스모도 대우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등을 들어 아마도 승부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문제를 증명하겠다고 했던 이들 중 두 명이 의문사를 맞았다. 한 명은 은퇴 후 도장을 운영하다가 도장을 매각한 후 스모 업계를 떠났던 코테츠야마(高鐵山)였고, 다른 한명은 전 요코즈나 키타노후지의 후원회장이었다. 이들은 1996년 4월 스모판에 만연했던 승부조작과 적폐들에 관련된 내부고발 저서 발간을 앞둔 상태였으나 공교롭게도 이 두 명은 죽은 날짜와 병원, 병명 및 상황이 모두 일치하여 의혹을 부채질하였다. 이 책은 '''1996년'''에 나왔으니, 고질적 문제였던 것이다. 2011년의 사건은 표면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조작은 가축과 사람의 경계선이라고 불리는 마쿠시타~주료 계급의 경기에서 이루어졌다고 발표되고 덮였다. 그러나 예전부터 승부조작에 대해서 암암리에 아는 사람은 다 알고있었지만 모른 척 하고 있었던 치부가 구체적인 물증과 함께 터져나왔기 때문에 도저히 덮을 수 었었던 것 뿐 실상 마쿠우치 레벨에서의 승부조작에 대해선 감히 제대로 파악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NHK 지상파에 방송되고 각종 대기업 중소기업들의 공식적 비공식적 스폰서가 붙는, 그리고 천황과 총리의 이름으로 우승배가 수여되는 마쿠우치 레벨에서의 수 십년간 쌓여온 승부 조작이 낱낱히 파헤쳐지면 업계 자체의 근간이 흔들려버리기 때문에 건드릴 수가 없는 것. 당장 위에 언급된 서적도 마쿠시타~주료 계급이 아닌 요코즈나들도 승부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저서였고, 대표적으로 언급된 키타노후지는 70년대, 치요노후지는 80년대 활동하던 선수이니 만큼 승부조작 문제는 수십년 전 부터 암암리에 계속되어 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상징적 존재로 스폰서와 도장을 비롯한 많은 것을 짊어진 요코즈나들은 10승 정도는 거두어야 체면치레를 했다고 인식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정말 실력 대 실력으로 맞붙는 경기는 5경기 남짓일 뿐, 부상 관리와 전적 관리를 위해 나머지 승부에 있어 돈을 받고 져준다거나, 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 상대를 매수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특히 당시 스모의 상징이였던 쇼와의 대 요코즈나 치요노후지가 당시의 연승 기록을 갱신했던 53연승 과정에도 승부조작 문제가 얽혀있었음을 암시하는 등 [* 물론 모든 요코즈나, 오제키, 마쿠우치 선수들이 이랬다는것은 아니다. 당장 이 연승 기록을 깬 동시대의 다른 요코즈나인 오노쿠니는 현역 당시엔 요코즈나 답지 않은 걸레짝같은 전적을 남기고 부상으로 신음끝에 단명 요코즈나로 은퇴하고 말았으나 이런 전적이 남들 다 하던 승부조작을 통한 전적관리와 부상관리가 아니였음이 나중에서야 밝혀지고 재평가를 받는다.] 이런 초 거물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 작가들 죽음의 원인이라고 의심되기 하는 상황. 스모협회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전 현직 요코즈나, 오제키 경력자들 또한 이러한 승부조작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2011년 당시 전 오제키 출신 협회 이사장의 꼬리자르고 사태를 봉합하는 결정은 업계를 살리기 위한 구국의 결단으로 내부에서 칭송받았다. 또한 스모협회 개혁을 외치던 타카노하나가 내부의 견제와 파도 파도 나오는 본인의 숨겨왔던 치부들을 견디지 못하고 내로남불의 전형과도 같은 모습으로 비참하게 스모협회를 그만두고 나갔으나, 그에 대한 현지의 반응이 덮어놓고 비난 일색만은 아닌것이 다른 의미로 본인도 대단히 깨끗하진 않았으나 결국 이 조작범들로 가득한 스모협회라는 적폐를 일신하려던것이 타카노하나였기 때문이다.[* 타카노하나를 디스하는 관계자들도 그의 승부욕만큼은 인정할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