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위스/정치 (문단 편집) == 기타 ==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의외로 후진적인 면모도 있었는데 [[1960년대]]까지는 전국단위 [[선거]]에서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독일]], [[영국]]에서 [[1918년]], [[프랑스]]에서 [[1944]]년에 [[여성 참정권|여성투표권]]이 주어진 것에 비하면 매우 늦은 것이다. [[1948년]] [[5.10 총선|첫 선거]]부터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 [[투표권]]이 부여된 [[대한민국]]보다도 한참 늦다. 나라가 너무 안정되고 보수적인 면모가 강하다 보니 발생한 참사. 물론 [[여성 참정권]] 주장 자체는 이미 [[20세기]] 초반에도 논의된 것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말 [[대공황]] 이후 정치권이 보수화되고 특히 양성의 정치적 평등 논리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고 [[여성 참정권]] 운동의 수뇌들이 외국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발언들을 한 보수 [[여성단체]]의 팀킬이나 다름 없는 만행도 겹쳤다. 그래서 [[여성 참정권]] 확보 논의는 한동안 제자리 걸음에 머물렀었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여성 참정권]] 논의는 다시 활기를 띄어 [[1957년]] 들어 일부 [[지자체]][* [[바젤]]-[[도시주]], [[제네바]] 등.]에서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었지만 [[1958년]] 국민투표[* 물론 당시에는 [[남성]]만 전국단위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었다.]에서 1/3의 득표만 얻으며 참패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성 참정권]] 도입 운동은 거세졌고 특히 60년대 말에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이는등의 압력을 가한 끝에 결국 [[1971년]] 국민투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2/3에 달하는 비율로 통과되면서[* 물론 이때도 투표권을 행사한건 남성들뿐이었다.] 비로소 [[여성]]들에게 전국단위 선거의 [[투표권]]이 주어졌고, 이에 따라 [[1972년]]까지 대부분의 지방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 아펜첼아우서로덴 주와 아펜첼이너로덴 주.]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지방선거]] 투표권이 없었다가 각각 [[1989년]] 주민투표와 [[1991년]] 연방 대법원 판결로 모든 주에서 여성투표권이 보장되었다. 반면에 [[리히텐슈타인]]은 [[1984년]]에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면서 [[스위스]]보다 일찍 도입되었다. [[독일어|독일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알자스-로렌]] 지방 등과 함께 묶어 [[대독일주의]]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실제로 압도적으로 [[안슐루스]]를 지지해 [[독일]]과 한 나라가 된 [[오스트리아]]와는 달리 [[신성 로마 제국]] 등에 대한 소속감도 별로 없고 독립성이 강한 편이라서인지 [[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중립]]을 지켰다. [[분류:스위스의 정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