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위스군 (문단 편집) == 역사 == 스위스 전사들은 과거부터 [[스위스 용병]]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교황령]]의 군대가 스위스의 용병으로 유지되기도 했다. 스위스연방군으로서의 특성은 1815년에 연방협약을 체결하면서 각 주(칸톤)마다 2% 정도의 인원을 연방군에 보내기로 하면서 나타났다. 1848년 헌법으로 칸톤군은 연방군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각 칸톤은 300명 이상의 상비군을 갖는 게 불법이 되었다. 다만 경찰력은 용인되었다. 예비군을 합하여 당시 스위스군의 병력은 8만명 수준이었다. 용병 제도는 1859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금지하였다. 다만 전통에 따라 [[스위스 근위대]]만은 허용하고 있으나, 법률상 스위스 근위대는 '치안 경찰'로 분류한다. 1871년에는 [[보불전쟁]]에 잠깐 끼기도 했다. 프랑스 주력군이 스당에서 포위당하자, 별개의 프랑스군 8만이 '스위스를 통과해서 프로이센 본토를 공격한다!'를 외치며 스위스에게 '정보가도'를 요구했고, 이에 스위스군 8만이 달려와서 저지했다. 무력충돌은 없었지만 스위스의 중립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탓인지, 1874년에는 예비군 체계를 정비하여 전시에 70만 이상을 동원할 수 있도록 바꾸었고 20세기에는 이 인원의 규모가 150만을 넘는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유지했다. 남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이었지 공격을 당하고만 있겠다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제2차 세계 대전 초 영공을 침범한 [[독일 공군(나치 독일)|독일 공군]]과 공중전도 자주 치렀고 전쟁 후반 연합군의 오폭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자 스위스 영공으로 길을 잘못 든 연합군 항공기들도 강제착륙시켜 억류하였다. 1989년 이후로 대규모 군제 개편에 들어가 인원을 줄였다. 1995년에 군대는 40만으로 축소됐고 2004년에는 예비역을 포함하여 22만까지 축소됐다. 《[[먼나라 이웃나라]]》 스위스 편에 나오는 얘기는 좀 옛날 얘기가 되었다. 물론 [[군축]]으로 인한 문제도 있는데, 2014년에 [[에티오피아]]의 비행기가 납치되어 [[스위스]]의 [[영공]]으로 진입했는데, 주말에 근무하는 [[파일럿]]이 없어서 공군의 [[에스코트]]를 받지 못한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제네바 공항까지의 에스코트는 [[프랑스 항공우주군|프랑스 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이 했다고 한다.[[https://www.theguardian.com/world/shortcuts/2014/feb/19/swiss-air-force-ethiopian-airlines-hijacking-office-hour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