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스코틀랜드 (문단 편집) === 종교 === 원래 가톨릭 사제였다가 [[장 칼뱅]]의 제자가 된 [[존 녹스]](John Knox)가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을 주도하여,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뱅주의 개혁교회가 다수를 차지했다. 장로회(presbyterianism)란 명칭 역시 이곳에서 처음 썼다. [[파일:스코틀랜드 국민교회 상징.svg|width=100%]] 특이하게 최대 교파인 '[[스코틀랜드 국민교회]](Church of Scotland)'[* 현지 [[스코트어]]로 The Kirk 더 커크, (국)교회라 부른다. 스코트어는 [[스칸디나비아]]쪽 언어들의 영향력을 짙게 받아 ch를 그냥 k로 대체하여 표기한다.]는 장로회임에도 잉글랜드, 아일랜드 같으면 성공회 교단에 쓸 법한 명칭('Church of~')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국교회'란 명칭으로 번역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민교회(national church)로 왕실 수장권을 인정하는 국교회(state church)가 아니다.[* 그러나 매년 열리는 총회(general assembly)에는 여왕(가장 최근에는 2002년도 총회에 직접 참석) 혹은 여왕이 임명한 특사(Lord high commissioner)가 참석하는 관례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스코틀랜드 국(민)교회'로 번역되는 교파는 신학적, 교회 조직상 [[영국 국교회]]가 아니라 주교고 교구고 나발이고 없으며, 오히려 한국 개신교도들에게 익숙한 장로회 교회이다. 역사적으로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들이 주로 믿었던 스코틀랜드 내 [[성공회]]는 잉글랜드와 달리, 오히려 미국이나 캐나다와 비슷하게 Scottish Episcopal Church라고 표기한다. 겉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토착 스코틀랜드인들과 잉글랜드 출신 국내 이민자 커뮤니티간 미묘한 이질감이 존재하는 판에 Anglican이라 지칭하면 영 모양새가 보기 안 좋기 때문이다. 성공회나 장로회가 급격한 신자수 감소를 겪은 오늘날에도 통합 시도가 없는 것은 두 개신교 집단 간 차이가 스코틀랜드 내부 역사적으로 워낙 중요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 종파 간에 차이를 인정하며 반목은 없는 편이며 [[교회 일치 운동]]도 큰 호응이 없을 수밖에 없다.[* 당장 영국 국왕이 취임 선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서약들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 장로회의 독립성 및 특권 보장 서약이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은 잉글랜드와 달리 [[장 칼뱅]] 본인이나 그 제자들에게 교육 받은 신학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가톨릭에 반발했던 이들이 아예 국가를 뒤집으면서 이룩한 결과니 그만큼 종교적 열성도 뜨거웠고 민족 정체성에도 깊이 뿌리가 박혔다. 관련된 스코틀랜드 측의 알렉산더 헨더슨, 데이비드 켈더우드, 아치볼드 존스턴 등의 유력한 목사 겸 외교관, 정치인들이 집필한 1차 사료에 보면 '잉글랜드 성공회는 신자들의 열망이 아니라 국왕의 변덕으로 이루어진 개혁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는 주장이 많았고 이런 종교적 대립은 결국 잉글랜드 의회와의 동맹이 파탄나고 올리버 크롬웰의 정복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북아일랜드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이쪽 출신들이었고 19세기까지도 반가톨릭 감정이 상당했다. 어찌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톨릭을 대상으로 원래 가톨릭 사제였던 존 녹스에 의해 목숨을 건 종교개혁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개혁자들이 주류였던 가톨릭에 의해 화형당하고 핍박받은 역사가 시간이 흘렀다고 쉽게 잊혀지지는 않는 법이다. 물론 오늘날의 스코틀랜드는 상당히 세속화된 국가다. 역사가 무색하게 20세기 후반부터는 나머지 유럽 국가와 비슷하게 급격한 세속화 과정을 거친 결과 현대의 스코틀랜드 교회는 신자 감소와 재정난을 겪고 있고 잉글랜드처럼 대다수는 무종교인이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무종교율은 36.7%에 달한다.] 이름뿐인 신자들이다. 당연하지만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 여부, 아일랜드 민족해방 투쟁 지지 여부 역시 '''스코틀랜드에서는 본인 종교와 무관'''하다. 당장 전 자치정부 수반인 앨릭스 새먼드와 니콜라 스터전도 모두 장로회 신자들이었으며, 스코틀랜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좌측에 있는 해미시 헨더슨은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성공회 신자였다(...). 똑같이 세속화를 겪었어도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 사회에선 비주류로 겉돌았던 스코틀랜드 내 가톨릭교회, [[성공회]]는 차라리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인이라는 이민자 집단의 중심점 역할을 하면서 그나마 교인 감소가 덜한 편이었던 반면, 역사적으로 주류였던 장로교회는 80-90년대를 기점으로 탈종교화가 급격해져서 오늘날 글래스고, 에딘버러 같은 대도시를 걷다보면 연식도 100년 훌쩍 넘은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들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부동산 매물로 나앉아 누군가 사서 문화 센터든, 지역 역사 박물관이든 간에 재개발을 기다리며 파리 날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