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콜피온즈 (문단 편집) == 역사 == 루돌프 솅커는 10대 초반 시절 때 스콜피온즈를 결성해서 친동생 마이클 솅커와 동네 친구들과 같이 동네 밴드 정도의 수준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평생 같이 밴드를 할 클라우스 마이네도 만나게 된다. 당시 인기 영국 록밴드였던 [[UFO(밴드)]]가 순회공연의 오프닝을 맞던 중 기타리스트가 여권을 잃어버려 [[마이클 솅커]]를 대타로 빌려왔는데 UFO가 그를 맘에 들어한다. UFO의 구애에 마이클 솅커가 UFO로 이적하자 스콜피온즈는 최악의 상태를 맞는다.[* 이는 리더인 루돌프 솅커가 리드가 아닌 리듬 기타를 했던 탓도 크다. 록/메탈 밴드 특성상 곡 멜로디 중심을 좌우지하는 리드기타의 포지션이 중요한데 그걸 리더가 아닌 다른 멤버가 담당했기에 큰일이었다. 기타리스트 중심인 밴드들 보면 특정 멤버 부재 시 그 큰 공백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루돌프는 믿을 만한 친동생이니 맡긴 건데, 나갈 줄을 몰랐을 것이다.][* 루돌프 역시 리드 기타쪽으로 연습을 많이 하였으나 그쪽으로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루돌프가 기타 솔로잉을 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나마 가끔 [[Still Loving You]]의 솔로를 연주하지만 그렇게 현란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루돌프 솅커의 기본기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리듬기타로서 그의 능력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결코 아니며, 걸출한 연주자들을 옆에 두고 굳이 솔로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또 할 때는 하는 양반이라 3집 수록곡 Life's Like a River의 라이브에서 트윈기타 솔로를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당장의 남은 투어 공연들은 루돌프 솅커의 친구였던 울리 존 로스(Uli Jon Roth)를 리드기타로 세워서 해결했다. 울리 존 로스는 자신의 밴드가 따로 있어서 활동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결국 스콜피온즈는 얼마 후 해체하게 된다. 이후 울리 존 로스의 밴드에 루돌프 솅커와 클라우스 마이네가 역으로 합류했고, 스콜피온즈의 이름이 상대적으로 더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밴드 이름을 스콜피온즈로 바꾸게 된다. 그렇게 새로이 구성된 멤버로 1974년 앨범 [[Fly To The Rainbow]]를 발표하여 정통 [[사이키델릭 록]]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조금씩 멤버 구성이 바뀌어가며 4개의 앨범을 내고 밴드는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등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소속 레이블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동시에 더 상업적인 앨범을 만들라는 요구를 했다. 울리 존 로스는 계속 사이키델릭 록을 하고 싶어했고, 변해가는 밴드의 정체성에 반발해서 밴드를 떠나기로 한다. 1979년 원년 멤버 마이클 솅커가 잠시 참여한 앨범 'Lovedrive'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 대형 밴드로 성장했다. 1980년과 1982년에 'Animal Magnetism'과 'Blackout'을 발매했고, 둘 다 [[플래티넘#s-2.1|플래티넘 인증]]을 기록하며 히트했고, 2년 후인 1984년에 발매한 'Love At The First Sting'은 대한민국에서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파워 발라드 [[Still Loving You]], 80년대 [[헤비 메탈#음악 장르|헤비 메탈]]의 대표곡 중 하나인 Rock You Like A Hurricane 같은 명곡들을 수록하여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미국에서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대박을 터뜨렸고, 곧 스콜피온즈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1985년에는 월드 와이드 라이브 투어를 다니면서 더욱 명성을 높였다. 이 라이브 투어는 앨범으로도 만들어져 미국 차트에서 14위를 랭크했다. 라이브 투어가 끝난 시점부터 밴드는 새 앨범의 제작에 착수했고, 3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을 거쳐 1988년 'Savage Amusement'가 발매된다. 앨범은 미국 차트에서 5위를 기록하고 역시나 플래티넘을 올리는 등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적으로도 성공한 듯 보였지만, 기존의 팬들과 평론가들 몇몇은 이 앨범을 기대에 못 미치는 다소 실망스러운 앨범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앨범의 대표곡으로는 스콜피온즈의 또다른 하드록 명곡인 Rhythm Of Love가 있다. 한편 앨범의 발매 후 밴드는 러시아에서 공연을 했고, 이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러시아 투어 후, 스콜피온즈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프로듀서를 디에테르 디에르크스에서 키스 올센으로 바꾸게 되고, 1990년 'Crazy World'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가장 성공한 앨범이며, 700만 장이 판매되었다. 싱글로 발매되어 무려 '''1400만 장'''이 판매된, 명백한 스콜피온즈의 최고 인기곡인 [[Wind of Change]], 애절한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Send Me An Angel 같은 히트곡들을 수록했고 이전까지 그저 독일에서 건너온 평범한 록 밴드였던 스콜피온즈를 유럽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밴드로 만들어주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전 리더 [[로저 워터스]]가 주최한 역사적인 [[The Wall]]의 베를린 장벽 라이브 공연에도 참가하였다. 유수의 독일 밴드들이 전부 참여한 이 콘서트에서 스콜피온즈는 서독을 대표하는 하드 록 밴드답게 첫 트랙인 In the Flesh의 부분을 맡았다. 레이블을 폴리그램으로 옮겨 1993년 발매한 'Face The Heat'은 이전의 앨범에 비하자면 정말 형편없는 성과를 거둔 실패작이지만, 잔잔한 발라드곡인 Under The Same Sun을 비롯해 스콜피온즈 팬들이 꽤나 좋아하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1996년에는 'Pure Instinct'를 발매했고, 이 앨범에도 밝은 분위기의 파워 발라드 You And I 등 스콜피온즈 후기 사운드를 대표하는 곡들이 몇 곡 수록되어 있지만 이전 같은 성공은 되찾지 못했다. 'Pure Instinct' 이후에 발매된 앨범들은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유의미한 성과를 못내고 있지만, 몇 년마다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월드 투어를 하며 밴드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사실 이런 밴드들은 주 수입이 앨범 판매가 아니고 공연이기 때문에 앨범은 계속 음악을 내고 있다는 지표일 뿐 실패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 유명한 [[롤링 스톤스]]도 전성기 시절은 따로 있을지언정 활동 자체는 꾸준하다. 공연 수입은 물론, 그 동안 히트곡의 저작권료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2010년 'Sting in the Tail'을 발표하면서, 앨범이 본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거라고 했고, 월드 투어를 가진 후 밴드를 해체하고 은퇴할 거라고 선언했지만, 투어 중 기를 잘 받은 모양인지 은퇴를 번복했다. 이후 2011년에 말 그대로 돌아왔다고 'Comeback' 앨범을 발표했다. 단, 해당 앨범은 신곡이 아닌 과거곡의 재녹음 음원만 수록한 앨범이다. 2015년 2월 20일, 멤버들의 나이줄이 50대 후반에서 60대가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새 스튜디오 앨범 'Return To Forever'을, 2022년에는 'Rock Believer'를 발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