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습정 (문단 편집) == 생애 == 풍류가 있고 담론을 잘해서 명성이 [[방통]]에 버금가면서 [[마량]]보다 높았으며, 건안 6년(201년) 유비가 유표에게 몸을 맡겼는데 습정은 이때 유비에게 떠났다. 건안 16년(211년) 습정은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갔다. 건안 19년(214년)에 유비(攻占)의 익주를 얻고 신하들에게 관직을 내렸는데 습정은 낙현현령, 비현현령, 광한태수를 지냈다. 본래는 [[유비]]의 부하였지만 [[조조]]가 [[형주]]를 공격할 때 누이동생 [[습씨]]와 헤어지게 되었고 습씨는 방통의 동생 [[방림]]의 아내였다. 습씨는 남편과도 헤어진 후에도 수절하면서 어린 딸을 혼자서 길렀는데, 221년 습정의 매제이자 남편 방림이 [[황권]]을 따라서 오나라를 상대로 싸운 [[이릉대전]]에 종군했다가 패하자 방림은 황권을 따라 위나라에 항복했다. 이로 인해 습씨는 방림과 10여년 만에 재회했다. 습정은 [[양희]]가 계한보신찬을 저술한 일을 도왔고 계한보신찬에서 마량, 위문경, 한사원, 장존, 은관 등과 함께 언급되었다. 습정은 같이 언급된 이들과 모두 넓은 뜻을 펴서 초 땅의 우수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과 함께 습정은 은관과 함께 각기 재능과 명망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들로는 명망이 있었고 상서랑까지 벼슬이 오른 습충(習忠)이 있었고 손자로는 습충의 아들로 보병교위. 장교필서에 오른 습융(習隆)이 있었다. 그의 후손이 한진춘추를 서술한 [[촉한정통론]]의 [[습착치]]이고 습착치의 후손이 바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습근평]](시진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