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나노(항공모함) (문단 편집) == 여담 == >(수병: 저 일본 배와 닮은 것은 없는데요.) >'''닮은 것이 없다니! 이리 줘. 내가 한번 찾아보지.''' >- 조지프 F. 엔라이트 아처피시 함장인 조지프 엔라이트 소령은 당당하게 상부에 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보고했으나 한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중순양함]] 격침한 걸로 하지?"라는 말만 듣다가 수 개월 후에야 인정받았다. 일본의 암호통신을 해석한 결과 격침시킨 함이 '시나노'라는 것은 파악됐는데, 당시 일본의 정규항모들은 '하늘을 나는 짐승'에서, 순양함들은 '산'이나 '강'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었던지라, 시나노가 [[고키시치도|일본의 옛 지명]] 중 시나노노쿠니에서 따온 것을 볼 때 원래는 전함으로 건조됐다는 것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사실 미국도 포로 심문을 통해 일본이 신형 전함 2척을 건조했고 3번함이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있었으나 '''시나노는 경순양함 이름이 될 수 있지만 전함 이름도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개조 과정에서 배수량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https://m.blog.naver.com/dawndong/221323417712|#]]]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시나노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선 "니네가 격침시킨거 항모가 아니라 순양함 아님?"이라는 결론을 내버린 것.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큰 항공모함이 어디 있냐?"는 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특정 분야에서는 철저했던 탓에 야마토급 3번함이 항모로 개조된 사실을 진술한 포로조차도 시나노의 크기를 실제 배수량보다 작은 5만 톤 정도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야마토급 전함의 규모를 당시까지 정확히 몰랐던 미국은 개조 과정에서 배수량이 3만 톤대로 줄었으리라 생각했다. 미국이 그 전까지 시나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효과가 있었다는 뜻도 될 듯. 이리하여 일본 해군의 기밀 유출 방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아처피시가 시나노를 추적할 당시 적함식별교범에 시나노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들은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로 시작해서 시나노에 이르기까지, 동형함이었던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제외하면 모양이 같은 게 거의 없다.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인 [[호쇼(항공모함)|호쇼]]까지 올라가면 더하고, 심지어 [[류조(항공모함)|가분수(...) 항공모함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엔라이트는 시나노를 발견한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기에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수병]] 하나가 이 그림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보관했고, 덕분에 이 그림은 상부에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다. 이후 아처피시가 세계 최대의 항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해군은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전후 항복 조인식 때 아처피시와 그 승조원들을 [[미주리(전함)|USS 미주리]] 옆에 위치하도록 해줬다. 엔라이트 소령은 이후 대령까지 진급하고 퇴역했다. 그리고 이 시나노를 공격할 당시 엔라이트 소령은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엄청난 항모를 발견했던 것도 있었지만, 그는 [[가토급 잠수함]]인 SS-247 데이스(Dace)에서 근무했을 때 항해사의 조언을 묵살했다가 적 항모를 발견하고도 공격에 실패하여 견책성 인사로 그라운딩(지상 근무)까지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겨우 잠수함으로 돌아와서 아처피시로 배치되어서 출항했다가 시나노를 발견했으니, 그 긴장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엔라이트 소령이 쓴《나는 시나노 호를 격침시켰다》라는 책에 나오니 참조. 아처피시는 이 시나노를 제외하면 격침 기록은 해방함이나 화물선 1척씩을 격침한 게 고작이지만, 이 시나노의 배수량이 워낙 엄청나서 이것만으로도 미 해군 잠수함 격침 총톤수 25위에 올랐다. 또한 위에 언급했듯이 아처 피쉬는 해전 역사상 최대의 단일 함선 전과를 기록했다. 배수량 7만톤은 웬만한 [[전함]] 2~3척 아니면 [[중순양함]] 예닐곱척, [[경순양함]]이라면 10척쯤은 잡아야 채울 수 있는 숫자이다. USS 아처피시는 어뢰 '''단 6발'''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한 모든 미 해군 잠수함 중 단일 함선 격침 톤수로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이 전과는 21세기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총합 톤수는 아처피시와 [[발라오급 잠수함|같은 함급]]의 USS 탱이 1위다. 총합톤수는 아처피시보다 4만톤 가량 높다. * 시나노 격침 일화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시나노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된 국내 자료는 1970년대에 출간된 승리와 패배 시리즈 제16권 가미가제 특공대편에서 언급된 것이 최초로 보이지만, 이 책에서는 주된 서술 대상이 가미가제이므로 시나노에 대한 서술은 매우 짧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글판 1988년 12월호에 이달의 북다이제스트 코너에 엔라이트가 쓴 책의 축약본이 실린 것이 확실한 계기로 보이며,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나노 격침 일화는 상당수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한 것이다. * 2차 대전이 끝난 뒤 현대전에서 대형 함선이 격침된 예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측 [[처칠급 잠수함]] 2번함인 HMS 컨커러(Conqueror)가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 미국제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배수량 1만 2천톤)를 가라앉히고, 아르헨티나도 미사일로 영국군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징발된 민간선박, 1만 5천톤)를 침몰시킨 경우가 있고 2022년에 일어난 [[모스크바함 격침 사건|모스크바 쇼크]](배수량 1만 2700톤)도 있다. 다만 군함과 민간선박은 배수량 측정기준이 다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군함은 물에 집어넣었을때 밀려나는 물의 양을 재는 배수량(Displacement, 즉 대략 무게와 비슷) 개념을 쓰는 반면, 민간 선박은 기본적으로 여객/화물선이므로 적재량/용적과 들어가는 건재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상선 크기에 용적(부피)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입항한 배에 세금을 매길 때의 관행이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언급된 숫자만으로 우열을 비교하기는 곤란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