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리아/외교 (문단 편집) === [include(틀:국기, 국명=튀르키예, 출력=, 크기=40)] [[튀르키예]]와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튀르키예-시리아 관계)]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튀르키예-시리아-이라크 관계)] [[튀르키예]]와는 [[1998년]]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상류의 댐 건설 문제로 전쟁의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시리아에서는 터키가 이스라엘과 손 잡고 물을 빌미로 시리아를 통제하려고 한다고 분노하였고 댐 건설 현장으로 시리아군이 진격하는 통에 놀란 터키군이 국경에 재배치되면서 일촉즉발 위기를 겪었다. 역사적으로 터키와 이를 갈 일이 있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만 제국 당시 시리아도 지배를 받았고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시리아 정교회]] 신도들이 살아가고 있었다(지금도 동부 [[마르딘]]을 중심으로 5만명이 넘게 거주 중이다). 그런데 1915년 오스만 제국군이 벌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학살 때 시리아 정교도들도 덩달아 학살당했다.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최저 몇 만에서 10만 이상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학살]]과 달리 묻혀져버린 비극이라 시리아에선 두고두고 이를 간다. 그리고 지중해와 맞댄 [[튀르키예-시리아 국경]] 지역의 영토인 [[하타이]]를 두고 두 나라 모두 영토분쟁도 빚었던 적도 있다.(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 시리아 영토에 있었으나 1939년 이 지역에서 거주하던 튀르키예인들이 시리아로부터 분리독립해 하타이 주로 튀르키예에 합병했다.) [[프랑스]] 지배를 받던 시절 시리아 정교도들이 입지가 커지고 현 아사드 정권과 협력적인 편이라 시리아 정교도 학살 문제로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와 같이 튀르키예를 비난하고 있기에 더더욱 갈등이 클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