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아파 (문단 편집) === 우마이야 왕조 치하 === 결국 후세인은 죽고 그 자손들은 살해당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립한 우마이야 왕조는 누가 봐도 [[정통성]]이 부족했다. 알리를 지지하던 시아파는 지속적으로 '찬탈자' 우마이야 왕조에 대해서 저항 활동을 벌였다. 시아파가 이렇게 세를 불릴 수 있던 것은 우마이야 시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랍인과 비아랍인 무슬림과 [[마왈리]]에 대한 차별이 심한 것을 잘 이용한 덕. 시아파는 '개종자중 구세주 강림설'을 퍼뜨리며 개종자들에게 큰 선교 효과를 가지고 왔다. 8대 칼리파 [[우마르 2세]]의 3년의 선정으로 인해 이런 현상은 많이 타파됐지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 시아파는 그 틈을 이용해 세를 꾸준히 불렸다. 한편, 무함마드의 삼촌 [[압바스]]의 자손인 압바스 가문은 중앙 정계에서는 멀어졌지만, 무하마드와 비교적 가까워서 하심 씨족의 일족이므로 존경 받는 위치에 있었다. 압바스 가문의 [[당주]] 무하마드는 '하시미야'라는 비밀 결사를 만들었는데, 이 비밀 결사는 같은 반체제 운동 집단인 시아파와 협력 전선을 펼쳤다. 하시미야의 조직원으로 호라산에 파견되었던 아부 무슬림은 8000명을 이끌고 거병하여 세력을 펼쳤고 이라크에 도달했다. 시아파 역시 이 거병에 함께 하였다. 물론 우마이야 왕조 역시 이 반체제 운동을 감지하고 있었으므로 대응에 나섰다. 무하마드의 뒤를 이어 당주가 된 아브라함 이븐 무하마드는 우마이야 왕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동생 '아부 알 압바스' 등 14명은 탈출에 성공하여 후세인과는 달리 잡혀 죽지 않고 이라크 쿠파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호라산에서 일어난 반란군은 쿠파를 점령하였고, 압바스 가문의 아부 알 압바스가 칼리프로 추대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패배를 거듭하다 대패하였고 결국 다마스쿠스가 함락되어 우마이야 왕조의 왕족 대부분이 살해되었다. 이렇게 [[압바스 왕조]]가 성립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힘을 보탠 시아파들은 [[오월동주|결국 압바스와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시아파는 '알리의 후손'을 칼리프로 추대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압바스 가문은 우마이야 가문보다는 무함마드의 가까운 혈통이지만 '알리의 후손'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바스조는 시아파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다시 시아파는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다. 물론 칼리프의 권위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개국공신]] 아부 무슬림 등 역시 탄압을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