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안시 (문단 편집) === 시안의 역사 === 진나라 시절에는 내사라는 관원을 설치하여 [[경기]](京畿) 일대를 다스렸고, 전한 경제 2년에 좌내사/우내사로 갈랐다. 장안은 진나라 시절에 장안향이었다가 한나라가 수도를 세우면서 장안현이 되었다. 전한 무제 태초 원년에는 우내사를 경조윤으로 개명하였고, 장안현을 포함한 10개의 현을 다스렸으며 치소를 장안현에 설치하였다. 군(郡)의 [[태수]]에 해당되는 직책이었고 경조윤이 다스리는 지역을 경조라고 하였으나 정식으로 군을 설치하진 않았다. 경조윤은 좌빙익, 우부풍과 함께 사례교위(지방의 주[[자사]], 주목에 해당)에 소속되었다.[* 이 셋을 삼보라고 통칭한다. [[삼보의 난]]에서 나오는 그 삼보가 맞는다. 그리고 이 세 관원이 다스리는 지역도 삼보라고 칭해지게 되었다.] 위나라 시절에는 경조군을 설치하고 경조윤도 경조태수로 변경하였다. 조비, 조예 시절에 황자를 경조왕, 진왕으로 책봉하면서 경조국, 진국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장안은 조위 정권 시절 촉한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오호십육국]] 및 남북조시대에는 다시 경조군으로 돌아갔으나 다스리는 관원은 태수가 아닌 경조윤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경조부, 옹주, 안서총관부, 봉원로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다가 명나라 시절부터 서안부를 설치하였고 이 명칭이 오늘날까지 유지된다. 중화민국 시절에는 성이 직접 현을 관리하도록 행정체제를 개편하면서 서안부는 철거되고 원래 장안현의 도시 부분에 시안시를 설치, 그리고 장안현의 치소는 원 장안현의 다른 곳으로 옮겨서 시안시와 장안현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옛날 체제로 복귀, 시안시는 다시 장안현을 포함한 주변의 현들을 통할하게 된다. 그러다가 시안시가 개발, 확장되면서 원래의 장안현은 시안시로 병합되어 장안구로 남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