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애틀 (문단 편집) == 역사 == 시애틀을 포함한 [[워싱턴주]]에 해당하는 지역은 옛부터 원주민이 살아오던 곳이었으나, 시애틀은 그 당시에는 도시가 아니라 일개 장소에 불과했으며 이곳에 "마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생긴 것은 백인 이주자들이 오기 시작한 1851년부터였다. '시애틀'이라는 이름은 1854년 아메리카 원주민 대추장의 이름인 '시애틀'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1854년 미국의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인디언 대추장 시애틀에게 땅을 팔라는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수쿠아미쉬와 두와미쉬 부족 대추장 시애틀은 피어스 대통령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중략)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형제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들은 우리 형제들이다. >바위산, 풀잎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이 땅을 팔더라도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중략)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들소(버팔로)를 본 일이 있는데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들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신은 하나라는 것을.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후략) 답장을 받은 [[프랭클린 피어스]] [[미국 대통령]]은 감명을 받아 "시애틀시"를 명명하였으며, 미국의 "시애틀" 도시의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위의 답장은 1990년대 대한민국의 중학교 환경 과목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나, 정작 원본이 남아 있지 않으며 후대의 첨삭과 재창작을 거쳐 80가지 이상의 버전이 현존한다고 한다. 현재도 사탐 과목의 교과서, 참고서에 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시애틀은 역사가 하나같이 짧은 미국 서부의 도시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참고로 영문 위키에 따르면 1874년이 아니라 1852년부터 시애틀이라고 불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1869년, 시애틀 추장은 1866년에 죽었기 때문에 1874년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시애틀시 이름의 기원이 시애틀 추장인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의 임기는 1853년 3월부터 1857년 3월까지인 것으로 볼 때 프랭클린 피어스와 시애틀 추장 사이의 서신 교환이 실제로 시애틀 시의 명명에 기여했는지는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마을이 건설된 뒤에도 이 지역은 한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1880년대에 반 [[중국인]] 폭동과 대화재라는 악재만 겪다가, 1900년대에 항구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원래가 퓨젯사운드 만에 위치한 천해의 양항이었으므로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 그렇지만, 시애틀 인구는 시대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2차대전]]이 발발하자 시애틀에 거주한 많은 [[일본인]]들이 추방되고 재산[* 시애틀의 건너편의 위성도시인 메디나와 벨뷰는 빌 게이츠와 제프 베조스가 사는 부자 동네로 유명한데, 원래 2차대전 이전에는 일본인 농민들의 농장들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2차대전으로 일본인 재산이 몰수되어 전후, 고급 주택 도시로 개발되었다.]이 몰수되는 통에 시애틀 인구는 정체되었고, 70년대 [[오일 쇼크]]가 발발하자 시애틀의 최대 제조 기업 [[보잉]] 사가 십만 명의 노동자 중 무려 6-7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이유는 막대한 개발비를 들인 [[보잉 747]]이 정작 주문은 기대한 만큼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중반은 미국의 경기 불황과 오일쇼크로 항공수요가 급감한 시기였고, 런치 커스터머였던 [[팬암]]도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70년대 후반 들어 항공수요가 회복되면서 장거리 대량수송이 가능한 기종을 찾게 된 항공사들이 늘어난 덕에 747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고, 보잉과 시애틀의 경제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때 시애틀은 지금의 [[디트로이트]]로 전락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시애틀과 워싱턴주의 또 하나의 주력 산업인 목재 산업도 쇠퇴하면서 [[이코노미스트]] 지는 기사에서 시애틀을 절망의 도시라고 표현하였다.[[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2/2018102201772.html|#]][* 당시 70년대 초반의 시애틀의 절망을 풍자하는 광고판을 시애틀의 어떤 부동산업자가 공항 근처의 고속도로에 설치했는데 "Will the Last Person Leaving SEATTLE — Turn Out the Lights(시애틀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은 전등불을 끄시오)"라는 내용이었다.] 70년대 내내 제조업의 경쟁력 쇠퇴로 인해 디트로이트처럼 추락할 위기에 처했던 시애틀은 70년대 막판인 1979년에 뜻밖에 작지만, 극적인 부활의 계기가 이루어졌다. 바로 1979년 초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뉴멕시코]]에서 시애틀로 이전해왔던 것이다. 위 각주에도 있듯 시애틀은 바로 시가지 건너편이 [[빌 게이츠]]의 고향이었다. 그 후 90년대 아마존이라는 또 하나의 거인이 시애틀에 등장하면서 시애틀은 [[2차산업]] 제조업 도시에서 [[3차산업]] 정보통신 도시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시애틀은 구글과 애플 같은 회사도 주요 연구 캠퍼스를 시애틀에 설립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에 서있는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이후 인구가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http://physics.bu.edu/~redner/projects/population/cities/seattle.html|#]] 1890년대에는 고작 인구 4만 명대의 작은 도시가 2010년대에 들어서면 60만[* 물론 시내 기준 인구.]을 넘어갈 정도로 인구 증가율이 높았다. 2차대전 이후로 발전하던 항공기 산업, 점차 발전해가는 동아시아권과의 무역은 이 도시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시애틀은 미 서부에서도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미국에서 도시권 인구 200만 이상의 도시 중에서는 [[미니애폴리스]], [[피닉스(도시)|피닉스]] 등과 함께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밴쿠버]]와 함께 IT 동맹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727029|#]] 2020년 6월엔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의 시위대가 중심부인 캐피톨 힐을 장악하고 [[캐피톨 힐 자치구역]]을 세우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