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영 (문단 편집) == 개요 == [[후주]](後周)의 제2대 황제. 재위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다른 군주가 30년 동안 할 만큼의 업적을 쌓았다고 하는 5대10국시대를 대표하는 [[명군]]. [[오대십국시대]] 후주의 건국자 [[곽위]]의 [[양자(가족)|양자]]였다. 원래 이름은 시영(柴榮)으로, 친부의 이름은 시수례(柴守禮)였다. 대개의 경우 후계자가 없어 양자를 들일 때는 성씨가 같은 방계를 들이는 게 보통이었지만 특이하게도 시영은 곽위의 아내의 조카, 다시 말해서 곽위의 처조카였으며 곽위는 시영의 고모부였다. 시영을 양자로 들인 이유는 [[아우구스투스|그의 비범한 능력을]] [[율리우스 카이사르|곽위가]] [[선견지명|미리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곽위는 성씨가 같은 친조카가 있었는데도 시영을 양자로 들였다.][* 카이사르 역시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카이사리온 대신 누나의 손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해 유언장에 명시했다.] 곽위가 그의 능력을 얼마나 믿었는가 하면, 죽을 때 '''"아무 걱정도 없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곽위는 후한 은제 [[유승우(후한)|유승우]]에 대항해서 거병했을 때 은제의 보복으로 친족들이 모두 살해당해서 후계자로 삼을 만한 직계 후손이 없었다. 그래서 처조카인 시영을 후계자로 삼은 것. 고모부의 성인 곽씨(郭氏)를 받고 양자가 되었으나, 고모부가 죽은 뒤에 성을 시씨(柴氏)로 복성(復姓)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