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오니즘 (문단 편집) === 충돌의 시작 ===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고 하는데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인]][* 아랍에 동화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말도 많다. 사실 아랍인들 자체가 중동의 수많은 민족들을 흡수해서 지금의 규모로 커진 민족이라는걸 생각해보면 타당성은 있다.]들이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 이민의 초기에는 유혈충돌이 없었고 상술한 것처럼 오히려 아랍 엘리트들은 시오니즘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서 유럽에 팽배한 반유대주의로 인하여 하루빨리 유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더불어 아랍인을 존중할 필요없는 미개인 취급하는 [[수정시오니즘|수정시오니스트]]들의 관점은 아랍인들과의 충돌을 빚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유대인의 수가 급증하고 여기저기서 건설되는 유대인 공동체가 아랍인에게 2등 시민의 지위를 강요하자 강성해지고 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시오니즘에 큰 반감을 품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폭동,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민 알 후세이니]]가 주도한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폭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 당국은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게 얘들인 건 둘째치고 이미 식민당국의 개입 정도로 소요가 진정되기에는 민족감정의 골이 깊어진 후였다. 여기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빚과 민족자결주의, 격화되는 식민지의 독립 민족국가 수립요구 등으로, 또 [[소련]]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영향력이 막강한[* 지금의 상황과는 매우 달라서 당시에는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와 요르단 등의 왕가가 친서구적 성격이 강했다.] 아랍지역에 공산국가[* 이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제1당이 노동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집단농장들이 공산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의 흔적.]를 하나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 각각의 계산에 따라 유대인 국가가 성립하는 것을 찬성했다. 1948년 UN의 분리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됨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고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는 그 사상은 팔레스타인 고통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랍국가들은 1차 중동전을 알 나크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전쟁 이전부터 약 1년간 무기 금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내에는 소화기 이상의 무기는 없는 상태로 주변 아랍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랍계가 유리했지만 유대계는 2차대전 중 영국이 [[에르빈 롬멜]]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로 모병해둔 부대 출신자와 유럽 각국에서 군경력을 쌓은 전역자들이 있어서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했다. 1차 중동전이 시작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미리 수입해둔 공작기계로 간단한 무기를 생산하는 한편, 유럽과 미국 등지에 특사를 파견해 기부금을 모았고[* 이때 미국에 파견되었던 사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최초의 여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 그 돈으로 2차대전 이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던 구형 무기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해 전쟁 초기에는 기갑 차량이나 공군력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후기에는 체코에서 전투기 등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 격차를 메꾸는 데 성공했다.[* 이때 체코에서 [[Bf-109]]를 수입하다 보니 이집트군이 사용하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스핏파이어]]와 묘한 공중전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아랍계는 우세한 무기와 전력체계[* 특히 요르단군은 영국군의 지도를 받아 아랍군단이라고 불리며 아랍계 최정예로 불리는 서구식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이권다툼[* 자국 이득도 있거니와 내부 갈등도 컸다. 1차 중동전쟁이 끝나고 겨우 3년 만에 이집트 파루크 왕가가 쿠데타로 무너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떡실신되고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해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래서 분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또 다른 의미로는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도하던 PLO가 입헌군주국인 요르단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숙청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PLO는 요르단을 떠나 레바논으로, 다시 레바논에서 리비아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참고.] 더이상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직도 적대관계이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빼앗기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 아니 시리아 같은 경우는 서로 국경에서 포격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리아로선 이대로 평화적으로 대충 놔두는 분위기(물론 골란 고원은 포기 안 하지만)였는데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더 엉망이 되면서 이스라엘에선 독재자 아사드 일가가 무너질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실각 직후의 이집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 중이다. 나중에는 어쨌거나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으르렁거렸지만,[* 1981년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에 있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기도 했다. 원자로는 타격을 받았지만 목표로 하던 완전 파괴는 실패했고 결국 [[걸프 전쟁]] 때서야 미군이 엄청나게 폭격하여 비로소 완전히 파괴했다.] [[걸프 전쟁]] 이후 미국한테 실컷 얻어맞은 이라크가 너무나 약체화되어 이스라엘은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아랍 민족이 아니라서[*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며 아랍인과는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름 아랍인에 비해 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이란의 환빠들은 아랍 주변 나라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 땅이라고 자부하는 게 비슷하다. 다만 환빠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게, '''이들이 주장하는 [[사산 왕조|페르시아 제국]]은 실존했던 강대국이었다'''. ~~환국과는 다르다! 환국과는!~~] 같은 친미국가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았던 [[이란]]은 혁명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집권한 후 외교 방침을 180도 돌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을 "악마 제국"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되찾아주는 것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았다. 그 뒤를 이은 이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제1의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요르단과 이라크가 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희박하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게 가뜩이나 반미국가 이란을 싫어하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이라서 이란으로서는 더욱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할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어쨌든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은 심각한 편. 이란의 핵 개발도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경우에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핵 협정 타결로 이란이 핵포기를 함에 따라 핵전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도 이란을 경계하고 있기에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에겐 잠시 비상이 걸렸다. 8,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아랍권에서 정보 및 여러 모로 중요한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친미 국가가 되면서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던 이집트가 단기간에 친미 독재자를 잃은 셈. 2012년 시점에서는 군부는 아직도 무시 못하나 여론은 반군부에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1차 총선에서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는 통에 이스라엘로선 30년 넘도록 평화를 유지한 이집트와 충돌도 염려해야 할 판국...일 줄 알았으나, 1년도 못 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권하던 [[무슬림 형제단]]이 개박살나면서 유야무야된 듯. 새로 집권한 엘시시 정부는 내부문제와 이슬람 무장단체들에만 신경쓰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