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지(대구) (문단 편집) == 개요 == 시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부의 고산1~3동 지역을 일컫는다. 택지지구로서의 시지라고 하면 보통 신매동, 욱수동, 사월동, 매호동, 노변동, 시지동의 비교적 작은 구역을 가리킨다. 시지(時至)라고 하는 지명의 어원은 시지원(時至院)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조선시대 때 지방으로 출장하는 관원이나 과객들이 이용하도록 전국 주요 길목에 설치한 숙박 시설을 ‘院’([[원(숙박시설)|원]])이라고 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천시]] [[장호원읍]],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안양시]] [[동안구]] [[인덕원역|인덕원]], [[진천군]] [[광혜원면]], [[남양주시]] [[퇴계원읍]], [[황해북도]] [[사리원시]] 등의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명은 그 흔적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서구의 원대동의 '원대' 역시 이러한 숙박시설이었던 대노'''원'''(大魯院)의 '''터(대:垈)'''다 하여 원대다. 다만, 시지의 경우 다른 곳처럼 “원”자가 남아있진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개설 초기 전국에 1천310개소의 원이 설치됐는데 경상도에만도 468개소에 이르렀다. 때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로 시지(時至)라고 했는데 원의 성격과 역할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1973&yy=2012|출처]] '시지' 자체는 행정동 고산2동 관할의 한 법정동이지만, 이곳이 옛 고산면 시절 면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고산면 일대에서 시지라는 지명을 널리 쓰고 있다. 고산(孤山)은 한자에서 알 수 있다시피 高山이 아닌 외롭고 작은 산이라는 뜻으로 [[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68804|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실제로 얕은 산들이 많지만 지대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아래에서 보듯 [[경산시]]에서 서북쪽으로 2km 가량 떨어진 평지에 있는, 높이 100m도 안 되는 작은 산인 고산(孤山)이 이 지역명으로 발전했다. [[파일:external/www.suseong.kr/intro_map.jpg]] 시지 지역은 행정동상으로 고산1, 2, 3동을 포괄한다. 행정동 내 법정동은 다음과 같다. * 고산1동 - 욱수동(旭水洞), 신매동(新梅洞) 일부 * 고산2동 - 가천동(佳川洞)·고모동(顧母洞)·노변동(蘆邊洞)·대흥동(大興洞)·삼덕동(三德洞)·시지동(時至洞)·연호동(蓮湖洞)·이천동(梨川洞) * 고산3동 - 매호동(梅湖洞), 사월동(沙月洞), 성동(城洞), 신매동 일부[* 달구벌대로 이북의 신매동 일대는 고산3동 관할로 들어간다.] 조선시대에는 [[경산시|경산현]] 서면(西面)이었으며, 1914년에 경산군, 자인군, [[하양군]]이 통합되었을 때 고산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81년에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었을 때 대구직할시로 이관되었다. 지금의 수성구 원도심권 지역이 [[1980년]] 동구에서 분리된 것과 달리 시지 지역은 [[1981년]] [[7월 1일]] 대구직할시의 출범 때 [[경산시|경산군]]에서 분리되어 대구로 편입되었으며, [[대구광역시]] 소속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역사는 이제 40년이 넘은 곳이다. 택지개발이 되기 전까지 이곳에는 제대로 된 도로조차 없었으며, 그나마 있는 도로는 현재 [[달구벌대로]]인 '고산(경산)국도'로 불리던 왕복 2차선짜리 도로였다. 주거지는 2층이나 단층의 오래된 한옥이나 양옥이 대부분이였고, 아파트로는 한우로얄[* 현 시지월드메르디앙아파트.], 삼두아파트[* 현 [[시지 반도유보라]]아파트.], 경북아파트[* 현 고산역화성파크드림.]같은 5층짜리 중대단지들이 있었다.[* [[대구도시개발공사]] 홈페이지에 의하면 현재 [[신매역]] 북쪽 하나타운 일대와 [[달구벌대로]] 남쪽 신매광장 및 배후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학교를 시지택지지구로, [[고산역]] 남쪽을 노변택지지구로 지정해 개발했다.] 지역의 대부분이 전부 다 과수원[* 특히 포도. 최근까지 성동이나 대흥동 등지에서 고산포도라는 이름으로 재배되었으나 점점 연호지구 개발로 인한 갈등이 심해지고 수성알파시티 개발 등으로 자연부락이 사라지면서 고산포도 판매가 예전만큼 많이 이루어지진 않는다.] 이나 농경지가 대부분이었고, 그런 곳은 아직까지 중심지에서 벗어나면 성동 등에서 쉽게 볼 수 있기도 하다.[* 매호동과 성동은 고산동의 유래가 된 고산과 논밭, 그리고 시골마을이 있는 지역이며, 시지지구 뒤쪽으로는 그냥 들이 펼쳐져 있어서 보통 날에는 [[동구(대구광역시)|동구]] 율하동, [[신서혁신도시]]와 팔공산을 볼 수 있다. 건물 위로 조금 올라간다면 [[경산시]]를 넘어 [[영천시]]까지 보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신매동, 매호동, 욱수동, 노변동, 그리고 시지동 일부와 2000년대 초중반 사월동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개발되어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있다. 이후에도 2010년대 후반 [[수성알파시티]] 개발로 주거단지와 업무지구가 개발되고 있으며, 시지지구의 가장 서측에 [[연호지구]] 법조타운 개발도 예정되어 있다. 나름대로 [[신도시]]. 전체적인 외형은 개발 시기가 비슷한 수도권 [[1기 신도시]]와 비슷하다. 시지지구는 [[경산시|경산]] 시내와 붙어 있다. [[욱수천]] 근처 아파트 단지들은 입구에서 몇 분 정도 걸으면 경산으로 갈 수 있다. 경부선 동편의 사월지구는 경산시 정평동과 완전히 연담화되어 있어 입구가 경산시에 있는 아파트도 있으며, 아파트 상가가 경산시에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경산시 [[중산동(경산)|중산동]]의 지명을 딴 중산삼거리는 [[수성구]] [[사월동]]에 있고, 이마트 경산점 버스정류장이 대구에 있다. 시지와 경산은 이러한 연담화로 인해 경계가 많이 흐릿해진 상황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시지 주민들이 볼 일이 있으면 경산 [[시내]]로 나갔지만[* 당시 아직 시지 지역 [[달구벌대로]]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아 출근 시간에는 지옥이 펼쳐지던 시기였다. 신매광장에서 만촌네거리까지 1시간씩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지에서 대구 중심지로 나가고 들어오는 버스는 가축수송하던 시기였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시지 개발이 거의 완료되며 시지가 경산보다 더 발전해 버렸다. 또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면서 그러한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영남대역]] 연장 이후로는 더더욱 심해졌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산1, 2, 3동의 면적은 매우 크다. 3개로 쪼개긴 했으나, 면 하나를 통째로 행정동으로 전환시켰기 때문. 그러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저 중 극히 일부다. 가장 큰 2동은 연호동, 고모동, 가천동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이 되어있고[* 여기에는 [[제2작전사령부]]의 존재가 크다.], 고모동과 가천동은 [[수성구]] 내에서도 오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고모동, 가천동 위치가 대략 2작사 뒷편과 [[경부선]] 사이에 끼어 있다. [[수성구]] 원도심권 지역(범어, 만촌동 등)은 물론 시지지구와도 다소 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다. 또한, 고산1동도 욱수동의 절반은 성암산이며, 고산3동도 성동 전체와 사월동, 매호동 일부는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어 밭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따라서 시지지구라고 불리는 부분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만, 수성알파시티 지역이 시지동 관할이 되고, 노변동 일부 지역을 시지동이 흡수하면서 시지동이 성장했고, 수성알파시티, 연호지구 등 업무·택지지구 개발로 시지지구로 이야기되는 영역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재미있는 건 시지지구의 이름의 유래인 시지동이 시지지구에서 그렇게 지분이 크지 않다는 것. 시지지구에서의 시지동은 시지지구 서쪽의 [[고산역]] 일대에 조금 걸쳐 있을 뿐, 오히려 시지지구의 중심지는 신매동과 매호동, 그 중에서도 신매동이다. 그렇긴 해도 시지지구의 전체 인구가 9만을 넘을 정도로 수성구 내에서 가장 많다.[* 다만 [[안심지구|안심]]과 더불어 [[대구광역시]]의 외곽 택지지구 중에서는 규모와 인구가 작은 편이다.] 게다가 사실상 시지 생활권인 [[경산시]] 서부2동[* 중산동, 정평동] 인구까지 포함하면 13만명에 육박하게 된다. 이 지역은 대구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수성구]] 안에 있지만 교육, 집값, 지리, 인프라 부분에 있어서 수성구 원도심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다. 때문에 같은 수성구지만 예전부터 대구에 소속되어 있었고 수성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범어동, 만촌동, 황금동 일대의 주민들은 시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는 시지지구도 인지도가 상승하고 접근성이 상승하였으며, 교육열과 집값도 대구의 다른 동네에 비해서 어느 정도 높아진 만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역사적으로 시지는 경산 소속이었으나, 1981년에 대구로 편입된 이후 2023년을 기준으로 42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하게 대구로 편입한 경우로 [[동구(대구광역시)|동구]] [[안심(대구)|안심]]/반야월과 [[북구(대구광역시)|북구]] [[칠곡(대구)|칠곡]]이 있다. 이 곳들도 원래는 [[경산시|경산군]], [[칠곡군]] 지역이었으나 시지와 함께 같은 시기에 대구로 편입된 케이스.] [[범어동(대구)|범어동]], [[만촌동]], [[수성동]], [[황금동(대구)|황금동]] 일대는 [[대구광역시]]에선 둘째치고 전국 부동산 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부촌]]으로 취급받는터라 같은 수성구 지역이여도 시내와 가까운 원도심권과 시지지구는 가깝고도 먼 사이. 다만 아무래도 수성구 내에서 가장 큰 택지지구로 "인구빨"이 있다보니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곳으로, 그에 따라 생활 환경 개선이 잘 이뤄지는 편이다. 전화[[국번]]은 790번대를 이용 중이다.[* [[사월동]]을 비롯한 시지 일대가 [[대구광역시]]에 편입된 후에도 한참 동안 [[경산시]] 국번(810번대)을 공용한 적도 있다.] 시내버스 권역 번호는 9번이다.[* 9번 권역은 [[대구광역시 시내버스/급행|대구광역시 급행버스]]가 지나지 않는 유일한 권역이기도 하다. 2호선이 대부분 지역을 커버하기 때문인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