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진핑 (문단 편집) == 집권 == 시진핑의 집권은 이전 주석들인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미묘한 권력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날 [[상하이방]]의 [[장쩌민]]이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후진타오]]에게 정권을 양도한 것은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장쩌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되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하는 조건으로 정권을 인수인계 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에 장쩌민은 정권 자체는 후진타오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들은 대부분 [[상하이방]]으로 채우는 꼼수를 썼고 결국, 후진타오를 반쪽 짜리 주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4세대 지도부가 출범할 때 지도부 9명 중 6명이 전부 상하이방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2006년 장쩌민이 차기 주석으로 밀던 '''[[상하이방]]의 [[황태자]]''' 천량위가 비리 문제로 낙마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말하자면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일격을 가한 것이다. 천량위의 비리 수준은 장쩌민조차도 실드를 쳐주지 못할 정도였기에 그로서도 이 숙청은 불가항력이었다. 후진타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해 2007년에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기회를 놓칠 새라 자기가 후계자로 밀던 공청단의 [[리커창]]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리커창을 주석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쩌민과 상하이방으로서는 리커창의 집권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 결국 상하이방도, 공청단도 아닌 [[태자당]]의 시진핑이 대안으로 올라오고, 리커창은 주석이 되지 못하고 총리로 만족해야 했다.[* 이 와중에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태자당의 [[보시라이]]의 몰락도 한몫했다.] 시진핑의 빠른 부상엔 후진타오의 협조도 한몫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주석직에는 2003년에 올랐으나, 장쩌민이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바람에 5년 동안 반쪽짜리 권력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3년 [[중국 공산당]] 제18회 당 대회 때 후진타오로부터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동시에 이양받았고,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국가 주석 임기가 끝나면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 주석 직도 승계하였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2013년 3월 14일부터 다른 일이 없는 한 2018년 3월 14일의 연임을 거쳐서 2023년 3월 14일까지 중국과 중국 공산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하고 관리형 주석으로 보였던 시진핑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10년 임기는 물론이고 종신임기까지 바라보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는 후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