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진핑 (문단 편집) == 정치력 평가 == 시진핑이 주석으로 갑자기 등극하기 전까지 후보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조용한 성격이다. [[후진타오]] 시대에 태자당의 선두주자였던 [[보시라이]]가 스스로 무리수를 범하다가 몰락하지 않았다면 시진핑은 절대 후보로 발돋움할 수 없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시진핑은 [[푸젠성]] 위 부서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 후보위원 150명 중에서 151등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진핑이 특채 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관례상 150명만 뽑는 중앙위 후보위원 자리에 당 고위 간부들이 시진핑을 억지로 밀어넣어서 151위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원로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은 불문가지다. 도올 [[김용옥]]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당 총서기가 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번지수 틀린 찬양을 늘어놓았는데, 위에서 봤듯이 당 간부들이 특채해서 중앙위 후보위원이 됐기 때문에 명목 서열상 꼴찌였을 뿐, 아직 깜냥도 안되는 중앙위 후보위원 자리에 덥썩 뽑힌 것은 누가 봐도 핸디캡이 아닌 '''특혜'''인 것이다.[* 여담으로 한때 시진핑을 '중국의 축복'이라고까지 찬양하던 김용옥은 시진핑이 종신 집권을 추구하는 걸 보며 자신의 안목이 틀렸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다만 잘해봐야 말석으로나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대권을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래 금수저인 시진핑이 당 고위 간부에 진입하는 것은 쉬웠어도, 당 최고위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공산당 내부의 살벌한 경쟁을 뚫어야 하며, 이것을 뚫고 대권을 장악한 것은 아버지 덕이 아니라 혈통 외의 시대적 운이 따라줬고 본인이 이루어낸 것이다. 보시라이의 [[자충수]]와 파벌 간 타협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운이 따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운도 좋았지만, 운이 다가왔을 때 놓치지 않고 거머쥘 만큼 능력도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총서기]]가 된 이후 절대 권력자가 된 것에는 시진핑의 정치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총서기가 된 2012년에는 사람들은 그가 강력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청단이나 상하이방 계파 소속이 아니라서 2012년 당시에는 자기 세력이 없었고 온화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몸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아 당내 계파들의 타협으로 총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와 같은 [[태자당]]이지만 시진핑은 그 같은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지도자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공산당 서열 2위이자 국무원의 총리인 [[리커창]]은 사실 성격이 호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진핑은 [[이오시프 스탈린|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색무취하고 안정지향적으로 '''보였다.''']] 때문에 계파의 타협을 통해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집단지도체제]]의 [[허수아비]]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임자였던 후진타오도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덩샤오핑]]이 죽기 전에 장쩌민의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다는 정통성이 있었고 공청단이라는 지지 세력이 있었던 반면 그런 스토리와 뒷배경이 없었던 시진핑은 후진타오보다도 약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2011년~2012년 당시 기사들을 보면 시진핑은 '조심스럽다', '튀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위키리크스에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자들로부터 지도력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총서기 취임 이후에도 반부패 운동 초기에는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시적인 백일 엄포로 고위직은 무사할 것'이라는 과소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성격까지 숨기며 몸을 낮추던 '''시진핑은 [[총서기]] 취임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내 생각에 나와 당신은 성격이 닮았다."'''[* 하지만 푸틴의 성격은 꼼꼼하다 못해 [[편집증]]적인 면이 있을 정도로 신중한 반면, 시진핑은 정치적 결정에 있어 상당히 즉흥적이다. 둘 다 조용한 성격에 '''권력욕이 매우 강하다'''는 점만 같다.]라고 말하며 절대 권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랑이든 파리든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을 펴기 시작해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숙청해 나가며 반대 세력을 일소했다. 물론 자기 밑에 있던 지지 세력들이 저지르는 부패 행위는 봐줬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3월 11일에는 개헌을 통해 국가 주석직은 세 번 이상 맡을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여 종신 집권으로 가는 문까지 열어버렸다.[* 여담으로, [[김정은]]도 비록 [[김정일]]이 지정해 주었다는 강력한 [[정통성]]은 있었을지언정 워낙에 개인적인 약점이 많았던 데다가 북한 군부에 워낙에 쟁쟁한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냥 눌려지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국엔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숙청에 숙청을 거듭하여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런 면에서는 시진핑과 행보가 유사한 셈이다.][* 본인 딴에는 닮았다고 했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매우 교묘하고 조용한 방법으로 독재의 틀을 마련했지만, 시진핑은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안 쓰고 헌법을 [[독재]]에 알맞게 뜯어고쳤다.] 그전까지 중국 권력 승계 규범[* 법=규칙이 아닌, 수뇌부들의 합의인 규범]에는 최고 지도자는 10년 이상 하지 않고, 승계 10년 전부터 후계자 구도를 몇 명으로 간추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경험을 시켰는데, 시진핑에게는 후계자로 확실시 되는 인물이 없었다. 이유로는 2가지가 제시되었는데, 첫째는 후계자가 있을 때 최고 지도자에 승계 압력이 거세서 생기는 최고지도자의 [[레임덕]]을 방지한다는 것, 둘째는 승계를 안 하고 당시까지의 규범인 10년을 넘어 더해먹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해외에서의 시진핑의 정치력 평가는 이전 주석들에 비하면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해졌으며, 대외관계에 강압적인 노선을 타면서 자국의 이미지를 제대로 망치고 있다는 게 주요 평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