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파히 (문단 편집) == 카프쿨루 시파히 == [[파일:Kapıkulu_Sipahi.jpg|width=220]] '카프쿨루 시파히'(Kapıkulu Sipahi, 문지기 시파히) 는 '카프쿨루 부대' 의 일원인 [[근위대|근위]] 기병대이다. 창설자는 [[무라트 1세]]. 초기 모집 방식은 '''예니체리와 동일했다.''' 즉,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점령지의 기독교 가정에서 남자 아이들을 징집해 25세까지 훈련시키고, 개중 가장 성적이 좋은 자는 제국의 고위 관료로, 그 다음은 이 '카프쿨루 시파히'로, 나머지는 예니체리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예니체리처럼 전원이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모집된 것이 아니었으며 공적을 세운 병사들 또는 투르크 귀족층에게서도 모집했고, [[메흐메트 2세]] 시대에 이르면 아예 '제국 내에 영토를 가진 튀르크인들 가운데' 에서만 선발하게 되었다. 카프쿨루 시파히는 총 6개 부대로 나누어 편성되어 있다.(Sipahi(ler[* 이하 'lar/ler'는 복수형.]), Silahtar(lar), Sağ Ulûfeci(ler), Sol Ulûfeci(ler), Sağ Gârip(ler), Sol Gârip(ler)) 이 가운데 실라흐타르는 [[제75레인저연대|레인저]] 같은 [[특공대]]로, 오스만 제국군 중 가장 뛰어난 전사만이 이 부대에 속할 수 있었고, 다른 시파히들과는 달리 일반 병사들도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전공을 세웠다면''' 이 부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실적만 있으면 올라갈 수 있는 위치인 것. 단 이 부대에 속하려면 어지간한 전공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또한 예니체리를 비롯한 보병들도 이 부대로 전입이 가능했는데, 그를 위해서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남으라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붙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예니체리 뿐만 아니라 다른 카프쿨루 시파히들에게도 ''''이런 동료를 저버린 배신자''' 취급 받았다. 하지만 일단 전입하면 막대한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게 되기에, 자살 임무 지원자가 끊이지 않았다. 이 부대의 지휘관인 실라흐타르 아아(Silahtar Ağa)는 황제의 개인 무술 스승 겸 보좌관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시파히 부대는 처음부터 오스만 제국의 귀족 엘리트들에게서 모집했는데, 이들은 술탄의 경호대 및 [[의장대]]로 활동했으며, 카프쿨루 시파히 6개 부대 중 가장 대규모였다. 그 외의 부대들은 대부분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모집한 실전 부대였다. 이들도 출신 및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분류되었는데, 일반적으로 Ulufeci는 중산층, Garip은 가난한 하류층 출신이였다. 하류층 출신 부대인 Gâripler는 다른 부대에 비해 경무장을 했다고 한다. 이들의 무장은 [[플레이트 메일]] 또는 [[체인메일]], 둥근 방패와 검, 합성궁, [[메이스]]와 [[도끼]]였으며 티마를르 시파히 중 '루멜리 시파히' 와 비슷한 무장과 복장을 했다. 티마를르 시파히들과 마찬가지로 17세기부터는 갑옷을 입지 않고 천으로 된 옷을 입거나, 갑옷을 일부만 입었다. 전장에서 이들은 술탄 및 총독의 근접 호위와 예비대 역할을 했다. 술탄은 이들을 예니체리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적극 양성하여 한때 2만여에 달했으나 예니체리의 발호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예니체리들을 제거하는데 적극 활동했으며, 예니체리가 사라진 이후 이들도 군제의 서유럽화에 의해 해체, 소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