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파히 (문단 편집) == 예니체리와의 대립과 소멸 == 이들 시파히들은 '티마를르 시파히' 와 '카프쿨루 시파히' 할 것 없이 예니체리들과는 서로 반목하는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스스로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예니체리들은 같은 교육과정을 걸쳤음에도 입장상 아무리봐도 자신보다 상위자가 된 ~~재산권을 소유한~~'카프쿨루 시파히'들을 질투했고 이후 예니체리가 세습 - 적폐의 단계를 거치며 타락하자 티마를르 시파히의 영지들까지 위협받으면서 이들과 대립하게 된 것. 결국 튀르크 토착 귀족들을 뒷배로 뒨 예니체리와 술탄을 뒷배로 두고 그대로 술탄에게 충성했던 시파히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고 대립 초중반엔 예니체리가 득세하나 신식군대의 등장으로 판도가 일변한 끝에 술탄측은 예니체리 세력을 일소했다. 이로 인해 "Atlı er başkaldırmaz."('''기병들은 반역하지 않는다''')라는 터키 금언이 생겼다. 1826년 당시 상술한대로 [[마흐무트 2세]]는 대대적으로 예니체리의 숙청을 지시했고 시파히 또한 벅벅 갈고 있던 칼을 그대로 예니체리에게 들이밀어 이들을 일소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고 대폭 정리된 이후에도 남은 잔당들을 추격, 소탕하는 것 또한 적극적으로 나섰다. 숙청 시작으로 부터 2년이 지난 1828년엔 시파히도 결국 해체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예니체리처럼 반발을 일으킨게 아닌 원하는 사람들은 시험을 친 끝에 신식군대에 그대로 편입하도록 해주었고 지주로 남고 싶은 티마를르 시파히들은 그대로 영지를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어 스스로 물러가게 했으며 이와 동시에 시파히의 병력 동원 의무또한 소멸시켜줬다. 시대변화에 발맞춰 평화로운 무혈 세대교체를 이룬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