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식민사관 (문단 편집) === 중세: 정체성론 === "한국 역사에는 진보가 없다"는 이론. 여기서 '정체'란 자아를 뜻하는 게 아니라 "느리다", 즉 '교통정체' 할 때 그 정체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중세]] 부재론이 있다. 또는 '''봉건사회 결여론'''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일본의 역사학계는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시대구분론을 적용한 [[소련]] 주도의 세계사적 발전법칙에 영향을 받아 [[동아시아]]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를 소위 유물사관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마르크스가 유럽역사를 보고 사회의 노동력 성격을 기준으로 시대를 크게 5가지로 구분한 것인데, 이에 따라 역사를 원시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농노/[[봉건제]] 사회, [[근대]] 노동자/[[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로 나눈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토대로 당시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볼 때, 한국은 조선시대에 이르도록 '노예' 신분인 노비가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미 종전부터 사회의 주 노동계층이 노예인 상태로 구한말까지 지속되었으므로 수 천년간 경제생산 및 사회구조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학자들은 조선사회는 수천년간 봉건 및 중세사회로 진입하지 못하여 일본의 [[에도 막부]]나 [[전국시대]]처럼 확실히 중세의 봉건제로 치환할 수 있는 시기가 없다, 즉 "한국역사에서는 봉건사회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 외에 조금 마이너한 형태도 있다. 이 인간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사에는 무인(武人)이 왕위를 찬탈한 적은 [[이성계]]의 [[역성혁명]]뿐이므로 일본사와 비교했을 때 중세가 없다고 볼 수 있단다. 이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 역시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을 비롯한 여러 개혁을 시도하면서 유럽 열강과 자기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연구하며 동아시아에서의 우월감을 강조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사무라이=봉건기사론, 바쿠후(막부)=의회론 등이다. 일본의 세계사적 발전 틀은 강조하며 단지 무인집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선 양반 체제를 폄하했던 것. 어느 쪽이건 조선은 고대이고, 일본은 중세를 거쳐서 근대에 진입한 국가이므로 수준의 차이가 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조선은 스스로 역사적 발전을 통해서 중세로 진입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