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식인 (문단 편집) === [[유럽]]의 식인 ===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유럽]]도 식인의 역사가 관통했던 곳이다. 고대에는 식인의 흔적이 있지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 빈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중세]]부터는 [[기독교]]가 득세하면서 교리적으로 식인에 대한 금기를 더 강화하고[* 기독교 이전 고대문명에서도 식인은 절대적 금기였다. 다만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도 식인에 대한 사례가 나오기는 한다.], 적발될 시 무조건 [[사형]]으로 다스렸다. 때문에 마을의 공공연한 풍속으로서의 식인 행위는 서유럽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이것이 완벽하게 근절되는 것은 이후로도 세월이 꽤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북부 민족들의 경우 [[귀리]]와 [[호밀]] 등의 냉해에 강한 작물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잉여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로를 잡지 않고 바로 죽이는 일이 많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종종 식인 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된다. 중세의 기록만 보아도 기근시 식인이 종종 행해졌고 전문적인 업자의 경우는 인육을 떠서 시장에 판 케이스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식인 흔적은 동화나 이야기의 형태로 구전되었다.[* [[장미의 이름]]에서도 살바토레 [[수도자|수사]]의 고향 마을에서 값싼 고기를 공급하던 업자가 인육을 공급해왔다는 것이 폭로되어 사형당했고, 어떤 사람이 그 무덤을 파서 시체를 먹으려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 약간 특이한 식인 사례는 [[십자군 원정]] 시기의 식인 흔적으로, 특히 농민십자군 시기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는 보급 부족에 이교도라는 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을 듯.[* 다만 이는 보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상대적으로 통제가 덜 되는 농민병 사이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죄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편에서도 인육 사건에 대해 다뤄지는데, 마아라트 알 누만의 소유권을 두고 레몽과 보에몬드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도중, 마아라트에 주둔하고 있던 레몽의 주둔군이 굶주림을 못 이겨 결국 주민들 시체에 손을 대는 사건이 발생하자 폴 레몽은 십자군 수뇌부에게 비난을 받았고, 레몽은 결국 마아라트를 불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남하해 보에몬드가 자연스럽게 빈 마아라트를 차지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이처럼 산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시체를 먹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을 볼 때, 아무리 이교도라고 하더라도 식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알려져 있는 '이교도는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지른 짓이다'라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정말 그랬다면 모든 전투마다 식인 행위가 벌어졌어야 마땅하지만, 십자군 전쟁기의 식인은 여느 식인 행위들과 비슷하게 식량이 떨어져서 정말 극단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렸을 때에만 발생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무리 이교도 간의 전쟁이라 하더라도 서로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것은 십자군 시기에도 당연한 상식이었고, 대체로 준수되었다. 십자군 하면 학살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정상적인 포로 교환이나 몸값 지불 등의 상황이 오히려 더 많았다. 학살은 성이 무력으로 함락된 뒤의 혼란 상황(이교도 간의 전쟁이 아닌 경우에도 빈번한 현상이었다)이나 한쪽이 몸값 지불을 거절하였을 때 벌어졌다(J. France, 1999). 근대 이후는 기근 시에도 식인 사례는 거의 사라지는데, 대신 [[의학]]적 용도의 사람 부속물 이용은 18세기까지 이어진다. 물론 실제 의학적으로는 전혀 효과가 없으며, 당대의 미비한 의술 수준과 [[미신]]적인 믿음이 결합되어 생긴 풍습. 사람의 피나 지방이 몸에 좋다고 하여 사형 집행장에 모여서 피를 받아 마시거나, 사형 집행인이 판매하는 사람 지방을 구해 먹었다는 [[http://www.huffingtonpost.kr/2016/08/24/story_n_11670532.html|기록]]도 있다. 좀 더 라이트한 경우는 [[미라]]가 약재로 팔린 경우다. 놀랄 것도 없는 게, 이 시기에는 미라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사회 전반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에는 '''가짜 미라 제조 공장'''마저 있었을 지경이었다. 몇몇 예시를 들어보자면 미라가 자주 발견되는 지방에서는 미라를 '''장작'''으로 사용했으며, 미라를 토막내(!) 장식용품으로도 사용되었고, 그림을 그릴 때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미라의 붕대를 풀어 종이로 만들어 판 인간도 있다. 이들 중에서도 제일가는 사람은 다름아닌 [[찰스 2세]]인데, '''미라에서 나온 가루'''를 긁어 자신의 몸에 발랐다. 이유는 고대 왕들의 힘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1세기에 이르러서 발생한 식인 사례도 있으며, [[2002년]]에 [[독일]] [[로텐부르크]]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아르민 마이베스]]라는 컴퓨터 기술자로, 죽어서 자기에게 먹힐 사람을 찾는 인터넷 광고를 올렸다. 놀랍게도 이 광고에 자그마치 4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응했다.[* 물론 대다수는 단순 장난이거나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이들 중 네 사람이 마이베스의 농장까지 왔다가 대화를 나눈 뒤 그냥 돌아갔는데, 단 한 사람인 베른트위르겐 브란데스(43)만이 최종적으로 그에게 먹히기로 결정했다. 마이베스는 그를 죽이고 토막낸 다음 냉장 보관했으며, [[올리브유|올리브 기름]]과 [[마늘]]을 넣어 요리한 다음 20kg이나 먹어치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