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경민(1953) (문단 편집) === 정치인 시절 === 뉴스데스크 앵커로서의 유명세와 당시 [[언론통제|이명박 정부에 의해 앵커직에서 강제 하차된]] 언론탄압 피해자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민주당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았다. 2010년 7월 재보선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은 한나라당 중진이자 정권 실세인 [[이재오]]를 잡기 위해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출마를 권유했으나 본인이 거절해 무산되었다. 하지만 2011년 9월에 MBC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이화여대 겸임교수를 하다가 스스로도 MBC 계열 기자 출신이 많던 [[민주통합당]][* 정동영을 시작으로 이득렬(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박영선과 노웅래가 들어왔으며, 이후 최문순 사장이 2008년에, 2011년에 신경민이 들어왔다. 이후 [[박광온]]과 [[김성수(1956)|김성수]]도 들어온다.]에 2012년 1월에 입당하여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민주통합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막판까지 공천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본인 고향인 전북 [[전주시]] 지역이나 서울 [[중구(서울 선거구)|중구]] 지역이 공천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결국 [[새누리당]]의 현역의원인 친박 [[권영세(1959)|권영세]]가 버티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공천을 잘했고 명분 및 실리적으로도 출마하기 좋은 상황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유는 본인이 기자가 된 이후 30여년 동안 거주한 곳인 데다 본인이 MBC 출신이고 그 당시엔 자신의 친정인 문화방송이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소재해 낙하산 논란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MBC는 2014년에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했다.] 원래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려 했으나, 출마 당시 정부의 방송장악을 비판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KBS, MBC 기자들의 파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고 정부와 여당은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항마 및 저지를 위해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정당성 확보라는 명분을 이유로 언론계를 중심으로 지역구로 출마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당장 본인부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클로징 멘트로 인해 정부와 [[한나라당|여당]]에게 찍혀 외압으로 인해 강제로 메인 앵커에서 하차했으니... 이에 고민하다 결국 지역구 출마로 선회한 것이고 그것을 부각하기 위해 공천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다보니 전략공천인데도 반발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으며 야권 연대로 인해 [[통합진보당]] 후보가 알아서 양보해 1:1 대결이 되었다. 선거 초반에는 이 지역 현역 3선의 [[새누리당]] [[권영세(1959)|권영세]] 의원에게 밀렸지만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하면서 52.61% 득표율로 역전에 성공해 그를 꺾고 당선되었다. 권영세의 패인은 당 사무총장 및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이라 중앙당의 공천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국 선거는 졌으나 수도권은 확실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 바람이 불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43:69로 야권에게 졌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지역별 결과/서울특별시|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서울특별시는...]]] 이를 신경민이 비집고 들어온 것. 2013년 5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14년 3월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 되자 초대 수석최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6년 2월 25일,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언론인의 인생을 회고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언론인 출신답게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영등포 을 후보로 재출마하여 35,221표를 득표(41.05%)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19대에서는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17대까지 이 지역에서 출마해 권영세에게 간발의 차로 패한 김종구 후보가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출마해 18.7%나 표를 잠식했지만, 상대적으로 권영세도 주중 한국대사관 대사로 나가는 등 지역구에서 오래 활동하지 못한 약점도 있었던 것도 있어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 당시 서울특별시당 시당위원장을 역임하며 무려 35석을 차지하는 괴력을 보여주는 등 당내 입지가 더 넓어졌다고 평가된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TV토론본부장을 맡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3선 도전을 선언했으나 [[김민석(1964)|김민석]]에 패해 경선서 탈락하였다. 만일 공천되었다면 같은 [[MBC]] 출신인 [[박용찬]]과 맞붙을 뻔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