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립 (문단 편집) == 가족 == 큰형인 신잡(申磼)은 문신으로 선조의 몽진을 호종해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광해군때까지 살았다. 둘째형인 신급(申礏) 역시 문신으로 동인인 홍혼, 김응남, 우성전 등이 [[이이(조선)]], [[성혼]], [[박순(조선)]]을 공격하자 이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후 이천으로 낙향해 모친을 모시며 은거하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공격을 받자 모친을 업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했다. 동생인 신할(申硈)은 도원수 [[김명원]]을 따라 [[임진강 전투]]에 참전해 전사하였다. [[선조(조선)|선조]]의 [[서자]]들 중 하나인 [[신성군]]의 장인으로, 선조와는 사돈지간이 된다. 게다가 임란 전까지만 해도 죽은 [[공빈 김씨]]의 아들인 [[광해군]]과 3살 차이밖에 안 나고, 어머니 [[인빈 김씨]] 역시 총애를 받았던지라 [[신성군]]은 그야말로 차기 세자로 점쳐지고 있었다. '''차기 국구'''였다는 이야기다.[* [[정철]]이 [[이산해]]의 책략에 걸려들었던 이유도 선조가 신성군을 더 아꼈기 때문도 없지 않다. 물론 임란이 터지고 광해군이 급히 세자로 정해지고, 신성군이 난중 요절하면서 신립의 집안이 외척이 될 일은 물 건너간다.] 여동생은 구사맹(具思孟)에게 시집갔는데, 이 여동생이 낳은 딸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아들 [[정원군]]에게 시집가 [[인조]]를 낳았다. 훗날 인조는 [[인조반정]]을 일으켜 즉위했고, 자신의 친부모를 '원종'과 [[인헌왕후]]로 추숭했다. 즉 신립은 [[인헌왕후]] 구씨의 외삼촌이 된다. [* 그리고 구사맹의 막내아들이 신립의 아들 신경진과 [[인조반정]]을 주도했으며 역시 조선 후기 신립의 후손 평산 신씨와 무반 요직을 독차지 하는데 일조했던 무신 구굉이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의 사위이자 오성 [[이항복]]과는 동서지간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야사(역사)|야사]]의 잘못된 기록이다. [[이항복]] 항목 참조. 신립의 아들이 바로 [[인조반정]]의 공신 중 한 명인 [[신경진]]이다. 재미있게도 탄금대에서 같이 죽은 부장 [[김여물]]의 아들이 바로 [[인조반정]]의 주모자인 [[김류]]다. 이 두 집안은 대를 이어 생사를 같이 한 셈으로 탄금대에서는 신립이 대장, 김여물이 부장(문관 출신 종사관)이었지만, 인조반정 때는 김류가 주모자 역이었고 신경진은 행동 대장역이었다. 이 아들 덕에 신립도 영의정 평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8.jsp?ksmno=1151|#]] 그밖에도 신경유, 신경인이 있고 딸 하나는 [[광해군]] 때 권신 [[이이첨]]의 장남 이대엽의 아내였다.[* 반정 직전 신경진 형제가 인조에게 매부 이대엽은 살려달라는 밀조를 했으나, 형 신경진이 조사를 받느라 정작 반정을 설계해놓고 참여못해 입지가 좁아졌다. 게다가 이대엽도 폐모론에 동조했으니 죽이라는 탄핵을 받아 인조가 입을 싹 닦고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처형 소식을 듣고 이대엽은 옥중에서 자결한다.] 3형제는 아버지가 전사한 국가 유공자라 혜택을 입고 무과 급제하고 반정에도 참여해 출세가도를 달렸다. 신경진은 무인임에도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부전자전]]이라고 신경진과 신경유는 아버지처럼 탐욕스럽고 포악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막내 신경인은 두 형과 달리 실무직을 지내면서 묵묵히 일하고 청렴해 칭송을 받았다. 여담으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급서한 해공 [[신익희]]의 13대조다. 또한 탄금대에서 전사할 때, 외조카도 참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외조카가 전황이 불리한 것을 알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주하려고 하자, 신립은 외조카의 머리칼을 붙잡고 "네가 어찌 살려고 하느냐"며 꾸짖고 함께 빠져 죽었다고 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504014_016|선조 수정 실록 권26 선조 25년 4월 14일 계묘 16번째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