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민당(1994년) (문단 편집) == 상세 == [[정주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실 문민정부에서 현대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비롯한 정치보복을 단행하다보니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1회용 정당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통일국민당]]과 [[박찬종]]의 1인 정당이었던 [[신정치개혁당]]이 합당하여 창당되었다. 합당 과정에서 [[김동길]]과 [[박찬종]]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전당대회]]에서 양쪽 모두 [[정치깡패]]들을 동원하면서 '''각목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들은 당대표등록 변경 신청과 대표등록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팽팽히 맞섰다. 합당 직후인 1994년 8월 [[박철언]]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1994년 재보궐선거]]에 박철언의 배우자인 [[현경자]]를 공천하여 당선시켰다. 1994년 12월 김동길과 박찬종이 함께 물러난 후, 1995년 3월 [[김복동]][*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김옥숙]]의 친오빠. [[노태우]]와는 매제-처남 관계이자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이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상당수의 지역조직이 자민련으로 넘어갔으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1991년)|민주당]]과 자민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50280|#]] 결국 1995년 5월 31일 자민련에 흡수된다.[* 법적으로는 이를 신설 합당으로 간주하고 있다. [[http://museum.nec.go.kr/vote/voteKorea2.do|참조]]] 9석에 불과했던 자민련은 12석의 신민당을 흡수한 덕분에 단숨에 20석을 넘겨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었고, 이후 [[15대 총선]]과 [[15대 대선]]까지 순항했다. 한편 합류에 불참한 [[임춘원(1938)|임춘원]] 의원은 얼마 뒤 독자적으로 신민당을 재창당하였다. 이 당은 [[무소속]] 정당을 표방한다는 차원에서 [[무정파전국연합]][* 원래는 '무소속전국연합'으로 하려고 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명 변경을 거부하였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비슷한 성격의 [[무당파국민연합]]도 있었는데, 이쪽은 총선에 참가했다가 득표율 미달로 해산하였다.]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으나 임춘원에게도 버림받은 후 15대 총선에는 후보를 내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인 1997년에 당원수 부족으로 해산하였다. 각목 난투극 외에는 정치 역사에서 이렇다 할 [[공기(은어)|족적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