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상묵 (문단 편집) === 악랄한 친일파 === > 학인동우회 사건으로 김주석 등 고문 > > 장장호 고문 후 병사 사건 > > 황학명 사건, 황학명 외 9명 고문 > > 부산세무과직원사건, 4명 고문, 2명 사망 > > 부산부두 미곡사건, 2명 체포 고문 > > 양태의 사건, 2명 체포 고문 > > 김상수 사건, 4명 체포 고문 > > 김영민 사건, 3명 체포 고문 > > 손유회 외 1명 체포 고문 사건 > > 부산학생 사건, 8명 체포, 그 가운데 3명 고문 > > 무궁당 사건, 20명 체포 고문, 주도자 김한경 고문 후 병사 >---- > 임종금, 대한민국 악인열전, 피플파워, 2016, 99쪽. 위의 인용문은 경남일보 기자 임종금이 집필한 저서 <대한민국 악인열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1949년 3월 반민특위 조사기록에 나온 신상묵과 박종표의 [[고문]] 사건 기록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상묵은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를 사용했으며 조직의 배후를 대라며 수십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상묵의 고문은 굉장히 잔인했다고 하며 신상묵의 고문 때문에 죽은 독립운동가만 해도 무려 '''4명'''이나 된다. 자세한 것은 다음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778|#]] 본디 신상묵의 이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경찰을 지냈다는 정도로 알려졌지만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둘러싸고 진상 규명에 적극적인 입장의 [[열린우리당]]과 반대하는 입장[* 당시 한나라당이 마냥 반대한 건 아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될 때는 찬성하였다.]의 [[한나라당]]이 대치하던 중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에 의해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신기남]]의 아버지 신상묵의 이력이 드러났다. 처음 폭로가 나왔을 때 신기남은 신상묵이 일제강점기에 교사로만 재직했다고 발뺌했다.[* 일단 신상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악행을 아들에게 전혀 말해주지 않았으며 어릴 때 일가 친척 누구한테인가 '일본군에도 간 적이 있다'는 한마디를 어릴 때 들었던 게 전부였다고 한다.] 거짓 해명 논란이 인 끝에 신기남은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신기남뿐 아니라 [[이미경(정치인)|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의 아버지도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 헌병''' 오장으로 복무한 사실이 폭로되고 신기남처럼 친일청산 강경론자였던 [[김희선(정치인)|김희선]] 역시 만주국 공안국 특무경찰이었던 것이 확인되는 등 기세 좋게 한나라당을 몰아붙이던 당시 열린우리당은 자충수를 둔 셈이었다. 어쨌든 당시 개정안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2005년]]에 통과되기는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신상묵이 포함되었으며 2009년 11월 최종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