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상사 (문단 편집) === 무교동파와의 충돌 === 오랫동안 서울 주먹계 정점에 서있던 신상사는 이북에서 내려온 대구 출신으로 염천시장을 장악한 조창조와 정학모[* 목포상고-경희대 태권도부 출신. [[진로그룹]] 왕자의 난 당시 장진호 측 용역깡패로 고용되었다가 장진호의 경영권 장악 후 진로스포츠단 사장으로 취임하며 신분세탁에 성공한다. 진로그룹 부도 후 LG스포츠 사장으로 이직했으나, [[김홍일(1948)|김홍일]] 게이트에 휘말려 구속된다.], 오종철을 필두로 무교동을 장악한 호남 출신 폭력배들이 힘을 합친 신흥 세력 무교동파와 충돌을 빚게 되었다. 이에 대표적인 사건으로 서순종 납치사건이 있다. 당시 건설공사 관련 문제로 서순종을 납치한 무교동파는 그를 구하러 온 신상사파 조직원을 무자비하게 린치했다. 격노한 신상사는 구달웅과 전철웅을 투입하여 서순종을 잡고 있던 무교동파의 에이스 이경원을 각목으로 두들겨 패 초주검으로 만들고 서순종을 구출해냈다. 이후 벌어진 사건이 그 유명한 19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이다. 당시 무교동파는 명동파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와 신상사를 비롯한 간부들이 자신들의 아지트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도 무교동 측이 오지 않자 신상사와 구달웅은 자리를 떴다. 얼마 뒤 무교동파 행동대장 [[조양은]]이 이끄는 조직원들이 회칼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난입했다. 당시 [[조양은]]이 노린 메인 타깃이자 신상사의 매제인 김수일[* [[조양은]]에 의하면 김수일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와 의형제였다고 한다.]은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피가 솟구쳤고, 우연히 자리에 있던 목포 출신 한 조폭은 구달웅으로 오인받아 온몸을 회칼로 난자당했다.[* 이 부분에서 오종철-조양은측과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오종철이나 조양은측은 사보이호텔 사건 당시 회칼이 쓰였다는건 꾸준히 부인한다. 실제로 조씨는 사보이호텔 사건으로는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는데 회칼이 쓰여서 사람이 다쳤다면 그런 형량은 불가능하다.[[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25|오종철 회고]]] 김수일은 장시간의 뇌 수술을 받아 겨우 소생했지만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온몸을 난자당한 목포 출신 조폭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보이호텔 사건 이듬해 벌어진 남산 도큐호텔 사건 역시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된 충돌 끝에 호남 출신 폭력배들이 신상사파를 습격하여 구달웅의 머리를 도끼로 찍고, 다른 조직원의 다리를 칼로 찔렀다. 당시 칼에 찔린 모 조직원은 도망치는 호남 조폭을 붙잡은 뒤 자신의 다리에 박힌 칼을 뽑아 상대의 귀를 자르고 "귀를 찾으려면 내일 사보이호텔로 나를 찾아오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신상사파가 아니었기에 [[김태촌]]을 시켜 오종철을 칼로 난자해 은퇴시키고[* 무교동파 두목 조창조는 이때 부두목 정학모와 오종철의 조직 내 알력 다툼 때문에 오종철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오종철은 이후 김태촌과 화해하기는 했다.] 결국 조창조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맹렬한 보복과 반격으로 무교동파를 사실상 와해시켰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962720#home|2013년엔 중앙일보와 당시 일을 인터뷰하였다.]] 조창조 역시 2008년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7790/1|인터뷰]]에서 “사실 달걀로 바위치기였어요. 부끄러운 얘기지요. 사보이호텔사건으로 신상사파라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됐습니다. 신상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사건이 나자 서울사람들의 응집력이 강하게 나타나더군요. 평상시 숨어 있던 신상사파의 방대한 세력이 드러났습니다. 힘으로도 돈으로도 백으로도 우리가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양은이가 20대였습니다. 뭘 알겠습니까."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이야기로 알 수 있듯 사실이 한참 와전되어 신상사가 조양은에게 칼부림을 당해 패배하거나 은퇴했다는 말이 꾸준히 잘못 알려져 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